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동굴에서 10여일을 갇혀 있었던 태국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무사히 구조되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의식주에 있어서의 괴로움이 많았을 그 상황 속에서 소년들의 코치는 명상과 마음수련으로 소년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익숙한 속담이 떠오른다. 여기서 나오는 호랑이는 진짜 호랑이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다. 그러면 이 속담의 숨은 의미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깨어만 있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비가 오든 오지 않던 자유로운,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은 우산이 준비된 자이다. 즉 해탈한 사람이다. 우산이 준비되어 있다면 비가와도 오지 않아도 괴롭지 않다. 요즘 열심히 듣고 있는 즉문즉설에서 법륜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최악의 상황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나치 치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상황이 아닌 마음가짐의 힘으로 그 상황을 통과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서가의 목록으로 남겨두는지 알겠다.

 

 

“ ‘’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가 한 말을 프랭클 박사는 인용한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사람의 길과 동물의 길, 공존의 길과 욕망의 길 사이에서 우리는 매번 고민하고 갈등하고 결정한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결정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

 

가장 큰 두려움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나고 나면 그 언덕이 생각보다 작게 느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상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머리만으로 하는 것의 한계!!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 삶 속에서의 결정과 실행만이 의미가 있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법륜 스님의 말씀처럼 고와 락은 하나이고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 각자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마음가짐을 잘 정하는 것만이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라는 말이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실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각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 부가되어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로고테라피 치료라는 각도에서 보면, 의미와 그 의미에 대한 인식은 허공에 떠 있가거나 상아탑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일이 행해져야 하는가를 깨닫게 한다는 말이다.

 

빅터 플랭크는 정신과의사로써 자신의 지식과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근거로 로고테라피라는 치료법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 이론의 가장 큰 매력은 철저하게 현실안에서 내가 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실천을 결정하고 실행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많이 듣는 말이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라서’, ‘사장님은 사장님이 처음이시잖아요.’라는 말인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두 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두 번 사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저 훌륭한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성자들은 우리랑 전혀 다른 사람이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때도 있다. 하지만 플랭크의 말처럼 우리는 도전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법륜스님 말씀처럼 그냥 하자’. 그리고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끄달리지 말고 계속 나아가자. 이전의 세상도, 지금의 세상도, 앞으로의 세상도 어려움은 있고 그 안에서 시지프스처럼 돌을 밀어올리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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