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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보이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5
닉 레이크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4월
평점 :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얘기에 망설임 없이 선택했던 '스페이스 보이'.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우주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지구 환경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아무래도 우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기 까지 하다.
또한 자연만큼 우주는 아직 미지의 세계라 그런지 영상이 항상 신비롭고 스펙터클하다. 아마도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닐까 싶다.
'인터스텔라', '마션', '패신져' 너무나 인상 깊었던 영화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우주나 항공관련 지식이 없어서 그런지 도입부는 전문용어들 때문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1부 궤도
오로라에 대해 묘사한 것이 인상 깊었다.
'지구가 자신의 유령에 둘러싸인 것 같다. 신령한 바람에 물결치는 유령 불이 만드는
왕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표현이 너무 가슴 아팠다.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비교되는 두 엄마의 태도
때문에 덜 상처 받으려 하는 주인공 레오의 마음이 너무나 잘 전해졌다.
'내 속에서 모든 희망을 빨아낸다. 내 안이 진공이 될 때까지. 아무 감정도 남지 않을 때까지.
이게 내가 엄마를 맞는 준비다. 나는 이 만남을 기대하지 않는 동시에 기대한다.'
시뮬레이션 아니 죽음 1
볼드체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엄마와 같이 온 우주 비행사 브라운이 죽었다. 아이들은 우주에서
그런 죽음을 많이 봐왔다.
'"엄마가 그러는데, 옛날엔 사람이 죽으면 천사가 된다고 생각했대. 하늘로 올라가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사람들을 지켜본다고 생각했대."
"우리처럼." 내가 말한다.
우리 모두 몸을 떤다.'
가깝진 않지만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눈물이나 땀도 조심하면서 사는 생활이라도 그것이 처음부터
그랬다면 그건 그냥 일상인 거다. 지구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인만이 알 수 있는
'우주의 어는 것도 달이 지구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것은 없다.'
처음 엄마와 EVA에 나가 달을 보면서 레오가 한 생각이다. 항상 레오를 지배하는 생각. 레오는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 때문에 어딘가에 항상 소속되길 바란 것 같다.
2부 지구
공 던지기
그렇게 바라던 지구에 왔지만 다시 네바다 기지에 격리되어 생활하던 중 예비 우주비행사 소토의
도움으로 네바다 기지 옥상에서 오리온과 리브라가 엄마를 만나는 걸 보면서 레오는 또 다시 서운함과 속상함을 느낀다.
'우리 엄마도… 우리 엄마도 저랬으면. 가끔.'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다. 다른 사람이기를 바라는 건 부질없다.'
그리고 레오가 지구에 오면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소토가 해준다. 탁구공
던지기
'공은 보이지 않는 곡선을 그리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공의 비행을 지배하는 질량과 힘과 각도와
속도가 만드는 신성불가침의 공식들. 공이 하강하기 시작한다.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공기의 표면에 쓴 반짝이는 수학. 공이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올라갈 때 그린 만곡을 반대로 그리며 떨어진다.
그러다 튀어 오른다.
퐁.
우리는 박스 안의 공을 다 던진다. 서로 번갈아서. 공들이 땅에서 핑핑핑핑핑 튄다. 공들이 비처럼
떨어진다. 공은 모두 하얗고, 땅은 회색이고, 풀은 갈색이고, 하늘은 파랗다. 이 모든 아름다운 색들, 소리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지구에
있다. 모두를 흡수하고 있다. 이 모든 감각을 빨아들인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선 절대 할 수 없는 놀이. 몸으로 받는 중력은 너무나 힘들지만 공을 던지면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다 다시 튀어 오르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우주에서 태어난 아이.그리고 아이스 크림.
아이스크림
'나는 스푼을 들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뜬다.
뇌가 폭발한다.
농담이 아니다. 이런 사고실험을 해보자. 통이나 캔에 든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가정하자. 당신이 먹어본 거라곤 건조식품 아니면 보전식품뿐이다.
이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는다고 상상하라.
그 차가움. 그 달콤함. 결빙의 맛. 공기를, 바람을, 미세한 거품을 가득 넣어 부풀린 느낌.
한순가 액체로 녹아버리는 느낌.'
그리고 그 일탈로 감기에 걸린다. 16년 동안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다 죽을 것처럼
아프다.
그리고 진짜 집으로 간다. 레오는 할아버지와 목장으로, 오리온과 리브라는
마이애미로.
집에 갈 준비. 집.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지구처럼.'
여기서부터 너무 순식간에 읽어내려 밑줄 치는 것도 잊었다. 우주에서 태어나 16살에 지구로 귀향해
겪게 되는 일들. 지구는 환경문제로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우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시선도. '에일리언' 처음엔 이 말도 충격적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와 다를 게 없는데 지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태어났기에 그것도 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이유로 탄생조차 터부시 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의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고는 하지만 태어난 아이들이 하나의 인격을 가진 인간이라는 데는 변함의 여지가 없다. 애완견 코멧과
목장에서 잘 적응하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면서 엄마가 오고 목장에 침입자들이 나타다 납치 당할 뻔 하다 결국
마운틴 돔으로 돌아가 다시 격리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알게되는 진실.
진실
‘나는 실험이었고, 이제 여기서 죽어간다. 물고기처럼. 해변에 떠밀려와 소용없이 펄떡이는
물고기.’
오리온과 리브라를 다시 만난 레오. 그러나 오리온과 리브라의 상태에 절망한다.
‘세상이 내 밑으로 무너져 내린다. 나는 다시 어둠 속을 둥둥 떠다닌다. 어둠. 내가 태어난
곳.’
나중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실성할 것 같다.
나는 눈이 빠지게 운다.
너무 울어서 앞이 안 보인다.‘
더 나중
‘실성. 마음을 잃다. 어떻게 마음을 잃어?
차라리 그러면 좋게.
운다고 눈이 정말로 빠질 리 있어?
눈물이 정말로 눈을 가릴 수 있어? 눈앞의 실제 상황을 보지 않게 할 수
있냐고!‘
‘여러 개의 나 중 하나가 떨어져 죽고,
대신 새로운 내가 뜬다.
나는 나무다.
나는 버섯이다.
내가 나를 대체한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내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내내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알고 싶지 않았던 거다.‘
3부 달
‘내가 우주 배양물의 일종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의심은 해왔지만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하고 힘들어 하던 중 다시 고산병에 걸린 코멧과도 작별하게
된다.
‘나는 코멧을 본다. 다리에 녀석의 온기가 느껴진다. 동동 감겨있는 녀석의 에너지. 녀석은
생명체로 변장한 용수철이다. 녀석이 침입자에게 달려들던 기억이 난다. 코멧이 나를 앞서 달리던 기억. 발이 땅에 닿을 새도 없이, 땅을 질러가는
액체처럼 날쌔게 움직이던 녀석.
속으로 한숨이 나온다.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인다. 얼굴을 코멧의 털에 파묻는다. 녀석이 몸 깊은 데서 작게 우르릉 소리를
낸다. 소리가 녀석의 가슴통을 울린다. 나는 녀석을 꽉 끌어안는다.
“잘 가, 코멧.”
멍.‘
그리고 첫사랑 오리온도 떠나보낸다. 우주 아이들 중 가장 상태가 안 좋았던 오리온. 진짜 음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정말 너무나 슬펐다. 어느 것 하나 맘대로 해보지 못하고 져야하는 아이. 그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다른
아이들의 마음.
사랑
'“미안해.” 오리온이 말한다. “미안해, 내가 나라서. 네가 너라서. 나, 나 알고 있었어.
이렇게 일찍 헤어지지 않더라도 난 결코,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거야.”
“알아.”
오리온의 눈이 공간으로 가득하다. 은하들, 영겁들. 무한으로 뻗어나간 어둠. 오리온이 빠져나가고
있다.
“고맙다, 레오. 너무나 이처럼 놀라운 날을 줘서.”
나는 증인을 선다. 눈을 감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오리온의 눈을 바라본다.
은하들, 검은 영원, 가슴 미어지게 깊은 대답.
그래.
그리고 오리온이 숨을 거둔다.
그 순간이 왔고, 그 순간이 지나갔음을 느낀다. 오리온의 가슴이 오르내리기를 멈춘다. 오리온의
얼굴이, 이목구비가 맥없이 풀린다. 오리온이 갔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리브라가 돌아온다.
우리는 서로를 붙든다.
우리는 놓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그리곤 엄마와의 화해. 엄마와의 작별.
중간3
‘떠나, 레오.
날아가.
날아가. 뒤돌아보지 마.
네가 자랑스럽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돼. 넌 내 자랑이야. 넌 내가 세상에 내놓은 최고의
모습이야. 하지만 세상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날아가.
사랑하는
엄마가.‘
발사3
'나는 눈을 감는다.
무중력.
다시 무중력.
집에 왔다.
중력이 없어졌다. 다른 종류의 무게감도 없어졌다. 내 가슴을 누르던 돌덩이도 사라졌다.
홀가분하다. 나는 깊이 숨을 쉰다. 자유롭다. 나는 다리를 접어 올리고 몸을 굴려서 공중에 똑바로 눕는다. 마운틴 돔의 온탕에 있을 때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좋다. 이건 360도 자유다. 모든 방향이 열려 있다. ‘아래’의 개념이 없다. 아무것도 나를 땅으로 잡아당기지 않는다.
나를 평면에 가두던 한계가 풀리고, 나는 다시 모든 방향으로 존재한다. 나는 다시 대양으로 던져진 물고기다.'
에필로그 2
‘너무나 이처럼 놀라운 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초록으로 용약하는 나무의 영령들과
푸르른 꿈을 꾸는 창공과, 그리고
자연스럽고, 무한하고, ‘그렇다’고 말하는 모든 것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사랑과 음악으로 넘치는, 무한대로 뭉쳐있는, 이 모든 이 모든 이 모든
’그렇다‘로 가득한 아름다움뿐이다.
모든 게 그렇다.
“안녕, 오리온.”'
그리고 옮긴이의 말
이 이야기는 존재하는 것들에게 ‘왜’와 ‘어떻게’를 묻지 않는 법,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 모든 종류의 사랑에 친절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작가는 손에 땀을 쥐는 순간들과 가슴 시리게 아픈 순간들을 시종일관
담담한 문체로 그린다. 운명보다 강한 중력에 묶인 인간의 나약함과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다.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휑하다. 말도 다 표현하지 못할 사랑의 크기가 담겨 있다.
소설인데 서사시를 읽은 듯한 느낌이다.
우주의 이야기여서 인것도 같고, 반복되면서 간단하게 그러나 너무나 명확하게 표현된 감정들 때문인 것도 같다. 정말 주인공의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사실대로 묘사해서 가슴에 콕 아프게 박힌다. 요즘 읽게 되는 청소년 물은 어른들이 읽기에도 너무나 재미있고 긴장감 넘친다. 500페에지 가까이
된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후반부로 넘어갈 수록 빠져들면서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우주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욱 우주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아이의 성장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재미있게 읽으리라 생각한다. 아직은 두꺼운 책이 무서운 저학년 아이에겐
뒀다가 읽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