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우 ㅣ 파랑새 그림책 93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12년 7월
평점 :
오늘 <마주보고 그림책>독서토론 첫 시간에 함께 읽고 토론을 했던 책이다. 예전에 한 번 읽어본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런 책도 있네.” 그 정도의 느낌. 어제 책이 배송되어 혼자 소리 내어 읽었다. 어둡고 무겁고 “어, 결말이 이게 뭐야?” 다 읽고 나서 "작가는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지?” 앞표지 노란 딱지 안에는 상복 터진 책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난 도대체 뭘 느껴야 하는 건지 고민하게 되었다. 단지 착한 개, 까질한 까치, 못된 여우 내가 찾은 거라고는 거기까지였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책에 대해 생각해 보고 책 읽어주는 어머니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줄 만한 그림책은 아닌 거 같았다. 숭례문학당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 계속 [여우]에 대해 생각했다. 도착하고 선생님이 건네주시는 논제를 훑어보고 또 책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인사를 하고 선생님께서 천천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을 때는 글만 거의 보며 읽었는데 읽어주는 목소리에 귀는 집중하고 눈은 글을 보지 않고 그림에 집중하며 그림 속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을 찾아갔다.
거센 불길에 날개를 다쳐 날 수 없게 된 까치의 마음, 그 아픔을 알고 있는 듯 그저 동굴 밖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는 개,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에 갇혀있는 공허한 여우의 눈빛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인생 가운데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이와 이미 그 상처를 지나 성숙해져 있는 이,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두고 또 다른 이에게 계속 상처를 주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큰불로 새카맣게 타버린 숲의 붉은 빛깔은 여우를 표현하는 색이기도 하고 여우의 분노와 외로움의 색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완성한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완벽한 협업이 독토 내내 느껴졌고, 마지막에 어? 하고 의문을 자아내게 했던 끝맺음은 독자의 해석에 맡겨 두었다는 것에 깊은 감탄이 나왔다. 앞과 뒤의 면지까지 그림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페이지. 그 안에 숨어 있는 메세지를 찾았을 때 나는 다시한번 작가의 섬세함에 놀랐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성되었던 권선징악의 울타리를 허물고 있는 요즘의 그림책들은 상처받은 인간들이 있을 뿐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에 공감이 갔다. 독토에 참가한 모두가 그림책 여행에 흠뻑 빠져있는 모습에 기쁨도 배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