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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평점 :
코로나가 발발한 직후 새로운 취미 활동이 유행했다. 이른바 ’차박’으로, SUV 등의 차량을 이용해 잠도 자고 캠핑을 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환경에서 대안 여가 활동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박 활동이 여가가 아닌 삶 그 자체가 된다면 어떠할까? 이 ‘노마드랜드’는 바로 차에서 먹고 살며, 파트타임이나 비정규직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취재한 책이다. 저자 제시카 브루더는 본인이 직접 노마드가 되어 약 3년간 그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또 취재하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그렇다면 이 노마드 족들은 본인들이 좋아서, 혹은 원해서 차를 끌고 길에 나선 것일까? 그렇지 않다.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노마드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재산과 연금 등을 잃고, 그 뒤로 회복하지 못하여 비자발적으로 길로 쫓겨난 사람들이다. 이 노마드들은 도로로 쫓겨나기 전까지 누구보다도 건실했던 사람들이었다. 성실히 직장생활을 했고 저축도 꾸준히 하였으며, 신용등급도 우량했다. 단지 집값은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직장에서 해고됐고, 저축은 날라갔으며, 최후의 보루였던 연금마저 사라졌다. 당연히 집 또한 담보 가치 하락으로 경매에 넘어갔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들에게 도로로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과거에 선례가 있었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한 후, 1930년 대 ‘하우스 트레일러’가 유행했다. 대공황 직후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후버빌’이라는 판자촌이 미국 곳곳에 생겼다. 그 와중에 자유를 좇는 이들은 “어디나 가고, 어디서나 멈추고, 세금과 집세에서 탈출한다”라는 구호 하에 이 하우스 트레일러에 열광했다. 노마드족들의 직속 선배인 셈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하우스 트레일러족들은 경기가 회복되고 ‘모빌홈’이 보급되면서 기존의 주택으로 복귀했지만, 노마드 족들은 기존 주택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경제가 “고용없는 성장”의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즉 노동시장에 탈락한 뒤 다시 복귀하는 것이 극히 어려우며, 이에 따라 안정된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아 기존 주택 질서에 편입될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노마드족들은 은퇴 연령을 넘긴 고령층이다.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은 주로 계절성 일자리이다. 예를 들어 캠핑 관리자 일을 한다든가, 성수기 직전에 ‘캠퍼포스’라고 불리는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분류하고 옮기는 일 등을 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쿨하게 헤어진다. 순수 육체노동으로서 고령의 노마드들이 하기에는 벅찬 일이지만, 대부분의 노마드들은 그러한 일자리라도 주어진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일을 하다가 몸이 아프거나 다쳐도, 타이레놀 등의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틴다. 그런 일자리에서도 밀려나면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이렇게 비효율적인 노마드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고령층의 노동윤리를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이다. 개인적으로 의도야 어찌됐든 기존 노동 시장에 편입될 수 없는 노마드들에게 이러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작년 코로나 사태 직후, 일자리를 잃거나 사업장을 접은 이들이 단기 일자리로 쿠팡 물류 센터에서 일을 하거나, 음식 배달일을 하면서 무사히 생계를 이어 나갔다. 한계에 몰린 이들에게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최저임금이니, 노동윤리니 다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당장 돈을 벌고 자신과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바야흐로 각자 도생의 시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풀린 돈은 주식과 부동산의 가격을 폭등시켰다. 그러던 와중, 작년 코로나 직후 다시 한번 엄청난 돈을 풀면서 주식과 부동산의 가격은 하늘 모르고 폭등 중이다. 이러한 자산을 가진 이들은 인류 역사상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자산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으며, 빈부격차 또한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한다. 실제로 거지는 아니지만 자산이 폭등하는 와중에, 그러한 자산을 가지지 못한 이들 입장에서 갑작스럽게 격차가 커졌음을 비관적으로 자조하는 말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어느 유럽 국가에서는 집에서 쫓겨난 이들이 강가에 배를 정박해 놓고 그 배에서 산다고 한다. 미국 또한 홈리스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또한 주거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도 노마드족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라 경제 위기 같은 것이 닥치면, 오늘날 여가를 위한 ‘차박족’들이 추후에 생계를 위한 ‘노마드족’이 될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작금의 현실이 만만치 않다. 각자 대비해야 한다. 과거 미국의 노마드족들도 본인이 노마드족이 될 것이라고 생각 못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