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고 위험한 건 싫다. 따분할 만큼 평온한 일상을 원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어떤 것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걸, 그게 평화의 기본 조건이라는 걸 그 애를 좋아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이제 다시 따분한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 먹먹한 슬픔을 덮고 있더라도, 언젠가는 이불처럼 잘포개어 옷장에 넣어둘 수 있을 줄 알았어. 가끔씩 꺼내 덮었다가 언제든 접어 넣을 수 있게. 비록 지금은 그 무게에 눌려일어나지 못하더라도. - P170
소마, 나는 우리가 이끼였으면 좋겠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할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