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가 대학을 다닐 때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주로 두사람이 방 하나를 사용하는 하숙집에서 기거했다. 내가 만난 ‘룸메이트‘ 가운데 법대생이 둘 있었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상수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학창 시절 온갖 책을 가리지 않는 독서광이었고, 글을 잘 썼으며, 입을 열면 시정이 넘치는 말을 쏟아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한 사람은 오로지 고시 공부에만 전념하는 학생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살았다. 나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그에비하면 내 공부는 늘 산만했다. 어느날 그가 나한테 왜 고시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기도 그 질문이 뜬금없다고 느꼈던지어조를 갑자기 힐난조로 바꾸었다. 불문과에서는 도대체 뭘 하는거지? 나는 고작 이렇게 대답했다. 불문학과니까 불문학을 하지.
대답이 아니라 대답의 회피였다. 그러나 저 고시생의 확실하고 단단한 신념 앞에서 내 공부의 내용과 목표를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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