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부부는 1930년에 이어 1931년에도 대부분 유럽에서 지냈다. 제네바 근처에 있는 프랑장 진료소의 오스카 포렐 박사는 젤다의 상태가 미국으로 돌아가도 될 만큼 호전되었다고 판단했다. 헤밍웨이 부부는 젤다가 정신병으로 입원하기 전인 1930년 1월 이미 키웨스트로 출발했다. 하지만 다음해 여름 그들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고, 9월 중순 파리에 들렀다. 헤밍웨이의 회상에 따르면 그와 스콧은 거기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빛의 도시 파리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찬란하게 빛을 발하다 종국에는 이렇게 바래고 말았다.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 가운데 판단의 문제‘ 라는 짧은 장을 보면 피츠제럴드의 성적 불안감을 둘러싼 일화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거기에 보면 스콧이 젤다에게서 1) 그가 성적으로 자신을 만족시켜준 적은 한 번도 없으며, 2)그 이유는 그의 페니스가 너무 작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고민하는 대목이나온다. 카페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였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에게 전문가입장에서 자기 물건의 크기가 적당한지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피츠제럴드를남자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직접 확인한 다음 루브르 박물관으로 데려가 조각상과 비교하게 했다. 어니스트는 스콧에게 "자네 건 완벽한데 뭘 그러나" 라고말했다. 그의 페니스 크기를 운운한 것은 그의 기를 꺾어놓으려는 젤다의 술책이었다.
이 이야기는 조작의 냄새가 짙다. 헤밍웨이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이야기의내용을 이리저리 바꾸었다는 사실은 그런 의심을 더욱 부채질한다. 하지만 에드먼드 윌슨의 1939년 일기를 보면 스콧이 성적 무력증(아마도 알코올이 가장 큰원인이었지 싶다) 때문에 걱정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