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는 비슷한 나이에 실연의 상처를 경험했다. 둘 다 열아홉에서 스무 살 무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매우 달랐다. 당연히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둘의 노력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원장》에 따르면 스콧 피츠제럴드가 ‘기네브라 킹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것은 열네 살 때였다. 그러고 나서 18개월 뒤인 1913년 1월 그는 다시 그 이름을 접하게 된다. 그가 그녀를 만나기까지는 2년이 더 걸렸지만, 그동안 그이름은 미국 귀족사회에 대한 동경과 함께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기네브라‘ 라는 이탈리아풍 이름에서는 세련미가 물씬 풍겼다. 실제로그녀는 동화 속에서처럼 구애자 가운데 최고의 남성만이 차지할 수 있는 왕의딸이었다.
기네브라는 시카고의 최상류층만 모여 사는 고급 주택가 레이크포리스트 출신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집안도 시카고의 쟁쟁한 가문들과 나란히 어깨를 계루었다. 그녀의 아버지 찰스 킹은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의 톰 뷰캐넌처럼 성공한 은행가로, 폴로 경주마를 몇 마리씩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자였다. 기네브라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데 자신의 배경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미모와 총명함으로 연애전선에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