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파리. 파리에 살아 본 사람이라면 이 계절의 파리가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황량함을 기억할 것이다. 게다가 쿤데라를 만나기로 한오늘 아침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서 대담자의마음을 더욱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릴케가 ‘회색 도시‘라고 했던 파리의모습이 지금의 파리의 모습은 혹시 아닐까. 약속 장소까지 버스를 타고가면서 나는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기 와서 놀란 것 가운데 하나는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도 건물들도 가로수도 지하철도모든 것이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심지어 가장 변화가 요구되는 텔레비전속 출연자들도 거의 전과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빠른 변화의 속도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혹시 여기는 너무나도 느린 변화의 속도때문에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변화란기억과 망각의 문제다. 그것은 기억하는 것과 망각해 버린 것 사이의 함수 관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