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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스토리보드북
박찬욱 지음, 이윤호 그림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이 붙은 작품이라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작년에 봤던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어쩔 수가 없다』의 스토리보드 북이 나왔다는 소식에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은 10여 년 전 ‘박찬욱’ 감독이 ‘이경미’ 감독과 함께 협업해 구축한 각본으로, 구상부터 개봉까지 17년이 걸렸다고 한다. 활자로 존재하던 서사가 이미지로 옮겨질 때 어떤 형태로 남는지, 이 스토리보드 북은 그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록이다. 책의 도입부에 잡다한 사설 없이 바로 시나리오로 넘어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 『어쩔 수가 없다』 줄거리
이야기의 중심에는 제지회사에서 실직한 중년 가장 ‘만수’가 있다. 그는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겠다는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문제는 그가 범죄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치밀함과 냉혹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절박한 현실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더 위태롭고, 더 안쓰럽다. 영화는 그 치기 어린 결단과 서툰 실행 과정을 블랙코미디의 결로 따라간다. 스릴러의 긴장 위에 미스터리와 씁쓸한 웃음이 겹쳐진다. 그리고 그 위를 덮는 건 박찬욱 특유의 미장센이다. 화면 속 소품 하나, 구도 하나까지 의도적으로 배치된 느낌이다.
📗 박찬욱 감독
박찬욱을 떠올리면 몇 가지 단어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도덕적 불편함, 뒤틀린 사랑, 씁쓸한 유머. 그리고 무엇보다 집요한 미장센이다.
화면 속 소품 배치와 구도는 이미 하나의 스타일이다. 인물의 신체마저 오브제로 기능한다. 예를 들면 남자의 엉덩이랄까. 그의 영화는 늘 불편하면서도 이상하게 끌린다. 끝 맛이 개운하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그래서 호불호가 분명하다.
📙 작화 및 스토리북
그림은 이윤호 작화가가 맡았다. 이력을 보니 ‘범죄도시’, ‘극한직업’, ‘헤어질 결심’ 같은 유명한 작품들에 참여해온 작업자이다.
스토리보드 북을 펼치면 영화가 얼마나 계산적으로 설계되는지 드러난다. 카메라 움직임과 시각적인 디테일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씬 번호, 시간, 장소, 구도, 컷 설명까지 촘촘히 정리되어 있다. 한 페이지에 다섯 씬이 배열되어 있어 웹툰을 넘기듯 읽힌다.
📝
이 책을 펼치면 영화 속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자세하게 그려져있다. 이대로만 찍어도 영화가 완성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즉흥처럼 보였던 장면들이 사실은 치밀한 설계 위에 놓여 있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영화가 다르게 보인다.
이윤호 작화가의 그림 덕분에 박찬욱 감독의 머릿속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스토리보드를 보며 배우들의 연기를 머릿속에서 재생해 보는 과정이 꽤 재미있다. 평면적인 그림이 배우들의 입체적인 연기로 완성되는 과정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은 관객석이 아니라 촬영 현장에 서 있는 느낌을 준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 영화를 보고 “와 재밌다”에서 끝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 ‘이 장면은 왜 이렇게 찍었을까?’, ‘저 구도는 어떻게 계산했을까?’ 궁금해하는 독자라면 이 스토리보드 북을 흥미롭게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