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1971)>
피카소, 마티스, 앤디워홀 등 남성 '거장' 화가들의 이름이 갖는 의미는 이미 너무나 크고 더욱 무거워지기만 하는 데 반해, 그에 대적할 만한 여성 미술가가 전무한 현실을 마주했던 여성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이 수없이 받았고, 던졌던 질문.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이 질문을 다루는 저자의 지적인 태도가 매우 인상 깊었다. 저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치 있는 여성 미술가를 재평가하는 방식이나 고유한 '여성적' 스타일이 존재함을 가정하는 방식의 한계를 적확하게 비판하며 이야기한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다'고.
그러면서 '천재성의 신화'를 걷어내고 그 이면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졌던 사회•제도적 불평등을 살필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화가를 '거장', '천재'와 같이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만들고 그에게 천재성을 부여하는 미술계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개인의 능력보다 사회 제도에 예술적 성취가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이익을 받는다는 말은 핑계가 될 수는 있지만, 지적인 태도는 아니다."라는 단호한 문장을 그녀의 글을 통해 절감했다. 명확한 사고와 용감한 내면을 가진 자만이 불평하지 않고 비평할 수 있구나 하는 명쾌한 깨달음도 얻어간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2006)>
이 책이 더욱이 흥미로웠던 점은 30년 후, 여성해방운동의 여파로 미술계의 상황이 크게 변화되고 난 후의 노클린의 글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계에서는 이제 젠더와 섹슈얼리티라는 주제가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더 이상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으며 루이즈 부르주아, 신디 셔먼, 제니 홀저와 같은 주요 여성 미술가들의 활동이 주목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가부장제가 오히려 더 뻔뻔스러운 표식 아래에 다시금 지배력을 되찾는 순간이 올까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비판적 실천'을 중심에 둘 것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런 저자의 우려는 단순 기우가 아니다.
현재까지도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정상가족'이라는 겉보기에 안락하고 그럴 듯한 보호를 받는 대가로, 가부장제로부터 언제나 '말썽부리지 말 것'을 강요 받아오고 있다. 온순하게 현실에 적응할 것.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일 것.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말썽'을 부리고 발견한 것은 한 줌이더라도 분명한 내 몫의 자유였다.
"페미니즘 미술사는 말썽을 일으키고, 의문을 제기하며, 가부장적인 비둘기장을 헤집어놓기 위해 존재한다."는 저자의 당부를 되새긴다. 책을 덮으면서 '부지런히 헤집어놓으며 살아가야지.'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