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가능성 - 나에게로 돌아오는 그림 독서 여정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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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마음을 잘 주는'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이는 '많이 받고 자랄' 천성을 타고났기에 그런걸까. 실로 마음을 표현하는 일엔 늘 부족함을 느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인들의 안부를 묻는 일마저 서툴렀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애정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났고 여전히 표현의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중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술 감상에 내가 애착을 갖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예술가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온갖 생각들을 응축해 작품으로 제시한다. 잘 받는 것 하나는 자신있었던 나는 줄곧 그들의 '마음'을 흡수해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전체가 하나의 헌사같았다. 아주 정성스러운 형태의 헌사.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경험들, 그리고 그 안의 미술작품, 책, 드라마, 영화들에 대한 애정 어린 인식과 감사. 살아가며 잊어서는 안될 이 귀중한 마음을 작가는 섬세히 엮인 이야기로 독자에게 다시 건넨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나도 인생에서 내가 받은 것들에 대해 이리도 아름다운 헌사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어쩌면 우리는 끈질긴 생으로 매일이고 온 힘을 다해 헌사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이 남긴 생각들로 인해 나의 일상이 오월의 온기를 머금어 더욱 향긋해져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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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방 - 나를 기다리는 미술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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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내 삶이 나의 예술이고, 내 예술이 곧 나의 삶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p.63)


실제로 나에게 예술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일부인 동시에 나를 그로부터 탈주하도록 하는 촉매이기도 하다. 결국 예술을 가까이한다는 것의 의미는, '일상적 삶으로부터의 탈주를 일상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의 개념도 그러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듯, 방은 온전히 일상적인 생활 공간이면서도 때때로 가장 급진적인 상상을 유도하며 그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인 '그림의 방'은 두 세계를 모두 포용하는 커다란 단어가 된다.


성찰 없는 일상과 실천 없는 성찰의 허구성을 아는 이들만이 예술가가 되는 듯하다.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치열하게 피워낸 세계가 책 속에 한가득 만개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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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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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1971)>

피카소, 마티스, 앤디워홀 등 남성 '거장' 화가들의 이름이 갖는 의미는 이미 너무나 크고 더욱 무거워지기만 하는 데 반해, 그에 대적할 만한 여성 미술가가 전무한 현실을 마주했던 여성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이 수없이 받았고, 던졌던 질문.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이 질문을 다루는 저자의 지적인 태도가 매우 인상 깊었다. 저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치 있는 여성 미술가를 재평가하는 방식이나 고유한 '여성적' 스타일이 존재함을 가정하는 방식의 한계를 적확하게 비판하며 이야기한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다'고. 


그러면서 '천재성의 신화'를 걷어내고 그 이면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졌던 사회•제도적 불평등을 살필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화가를 '거장', '천재'와 같이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만들고 그에게 천재성을 부여하는 미술계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개인의 능력보다 사회 제도에 예술적 성취가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이익을 받는다는 말은 핑계가 될 수는 있지만, 지적인 태도는 아니다."라는 단호한 문장을 그녀의 글을 통해 절감했다. 명확한 사고와 용감한 내면을 가진 자만이 불평하지 않고 비평할 수 있구나 하는 명쾌한 깨달음도 얻어간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2006)>

이 책이 더욱이 흥미로웠던 점은 30년 후, 여성해방운동의 여파로 미술계의 상황이 크게 변화되고 난 후의 노클린의 글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계에서는 이제 젠더와 섹슈얼리티라는 주제가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더 이상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으며 루이즈 부르주아, 신디 셔먼, 제니 홀저와 같은 주요 여성 미술가들의 활동이 주목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가부장제가 오히려 더 뻔뻔스러운 표식 아래에 다시금 지배력을 되찾는 순간이 올까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비판적 실천'을 중심에 둘 것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런 저자의 우려는 단순 기우가 아니다. 


현재까지도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정상가족'이라는 겉보기에 안락하고 그럴 듯한 보호를 받는 대가로, 가부장제로부터 언제나 '말썽부리지 말 것'을 강요 받아오고 있다. 온순하게 현실에 적응할 것.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일 것.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말썽'을 부리고 발견한 것은 한 줌이더라도 분명한 내 몫의 자유였다. 


"페미니즘 미술사는 말썽을 일으키고, 의문을 제기하며, 가부장적인 비둘기장을 헤집어놓기 위해 존재한다."는 저자의 당부를 되새긴다. 책을 덮으면서 '부지런히 헤집어놓으며 살아가야지.'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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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일가 - 교토 로쿠요샤, 3대를 이어 사랑받는 카페
가바야마 사토루 지음, 임윤정 옮김 / 앨리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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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커피일가는 1950년부터 70여 년 간 대를 이어 자리를 지킨 교토의 작은 찻집 '로쿠요샤'와 오쿠노 일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쿠요샤가 운영된 70년간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화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대거 등장했고 특유의 가성비와 매끈한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쿠노 일가는 위태롭고도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켰고, 그 결과 오늘 날 로쿠요샤가 지니는 의미는 단순 '찻집'이라는 단어를 뛰어넘은 지 오래이다. 


나는 평소 개인카페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리지 않고 여러 공간을 가보는 것을 즐긴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면 그곳이 주는 익명성과 쾌적함은 어떤 면에서는 편하고 익숙하다. 그러나 그 카페 자체가 나에게 '소중'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반대로 개인카페의 경우 확실히 공간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다. 그래서 문득 그 카페가 사라진 걸 발견하는 날에는 공간 하나를 잃은 것 그 이상의 상실감이 밀려온다. 그건 그곳에 스며들어 있던 시간을 잃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사람이 다른 누구로 대체되어도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건조한 공간에 익숙해져 가는 시대에 로쿠요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한 사람의 존재유무가 그 공간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꿔버릴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변화무쌍하고 '사람 같은 공간'이 그리워졌다. 사람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사람 같은 공간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 아닐까?


가보지 않은 곳도 그립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와 그것이 담긴 책의 마력인 듯하다. 언젠가 꼭 교토의 로쿠요샤에 들러 그 축축한 시간들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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