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에 대한 두근거리는 예언
류잉 지음, 이지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8월
평점 :
대만 로맨스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다. 이름 장벽이라는 크나큰 산을 넘어야 하기에 쉽게 도전해볼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이 책의 발췌글 어떤 부분에 딱 꽂혀서 도전해보게 되었다. 발췌된 글은 10대 소년에게서 나올 대사는 아니었지만 왠지 취향저격일 것 같았다. 소설 표지에서부터 청춘물이라는 느낌이 확 나서 오랜만에 풋풋하게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도 했다. 실제로 읽는 동안 풋풋하고 간질거리는 느낌이 많이 나서 내가 이렇게 로맨스에 굶주렸었나 생각했을 정도. 게다가 두툼한 책이 진도는 어찌나 잘 나가던지 붙잡고 계속 읽다보니 어느새 끝이었다. 다 읽고보니 소재 때문에 장르는 로판으로 봐야할 것 같고, 배경은 현대물에 10대의 사랑을 그리고 있어 가볍게 보기에도 좋았다.

제목을 보면 어떤 예언이 있겠구나 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설의 초반부에서 주인공인 '야오커쉰'이 버스 교통사고에 휘말려 의식을 잃고, 그 사이에 미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열일곱살의 커쉰은 친구에게 남자친구를 빼앗기고, 성적 미달로 우수반에서 보통반으로 강등당했으며, 그 일로 엄마와 다투기까지 한 상태에서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커쉰이 1년 후인 미래에 도착해보니 자신은 전교 3등인 보통반 반장 '바이상환'과 사귀고 있고, 한부모 가정으로 쪼들리며 일했던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과 재혼을 해 경제적으로 풍족해졌으며, 조용하고 날선 분위기의 우등반보다 시끌벅적한 보통반에서 활기차게 적응을 잘 하고 있는 상태였다. 너무 달라진 미래의 모습에서 커쉰은 남자친구라는 상환과는 좀 어색한 상태라곤 하나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커쉰의 눈앞에서 갑자기 상환이 교통사고로 죽기 전까지. 이후 상환의 사고를 목격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 커쉰은 꿈에서 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불안해하면서도 상환에게 향하는 마음을 막지 못한다. 결국 커쉰은 이대로라면 상환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꿈 속에서 봤던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신이 봤던 미래가 그대로 실현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안고 있는 커쉰. 우등반의 친구들 사이에 섞이려 노력하다가 결국 남자친구도 우등반의 친구에게 빼앗기고, 우등반에서 쫓겨나 우울감에 빠져있을 땐 미래에 관해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예지몽을 꾸게 되며 커쉰에게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것이 커쉰이 스스로 일어난 게 아니라 커쉰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반장 상환의 도움일지라도 말이다. 우울함에 집에 틀어박혀있던 커쉰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에 나오게 하고, 바로 그 날 교통사고로 커쉰이 혼수상태에 빠져 예지몽을 꾸고. 이렇게 복잡다난한 일이 일어남에도 돌이켜보면 남자주인공인 상환이 적재적소에 굉장히 잘 나타나는 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커쉰이 곤란해질 때마다 나타나서 상대방을 물러가게 만드니 커쉰이 반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이게 바로 로맨스소설의 맛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여주인공인 커쉰에게 예지능력을 줘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한편, 친구들과의 우정 요소와 로맨스 요소도 여기저기 넣어둬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다. 물론 우리나라 소설이 아니다보니 약간 번역 특유의 느낌도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배경이 낯설기도 했으며 전개에 무리한 설정이 간간히 보이기도 했다. 특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 때문에 남녀의 구별이 불가능할때는 좀 곤란하기도 했었다. 읽다보니 대충 성별을 때려맞추며 읽었지만. 아 그리고 소설 속 주요 조연 중 하나의 이름이 '빙쉰'이라 웃기기도 했다. 이름값하는 캐릭터라 더이상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건 다행이었다. 처음 읽어보는 대만 로맨스소설은 전체적으로 귀여운 맛에,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읽기에 좋았다. 예지와 로맨스, 평행우주같은 요소를 다루고 있었던 소설을 보며 개인적으로 결말은 좀 다른 쪽으로 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어떻게 꼬아놓아도 해피엔딩이니 상관은 없으려나.. 그래도 읽는동안 재밌게 볼 수 있어서 기분좋게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럼 그 꿈에서 내가 널 좋아해?”
“아니, 꿈에서 우린 그냥 친구였어. 넌 전혀 나 안 좋아했어.”
나는 일부러 상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다.
“그럼 그건 확실히 예지몽이 아니네.” 상환은 또 살포시 웃었다.
“왜?”
“예지몽이 맞는다면, 꿈에서 내가 널 좋아해야 하거든.” - 24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