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파괴할 힘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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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장벽이 상당한 책이다. 낯선 설정들이 넘쳐나고 배경은 어둡기 그지없는데다가 영화같은 일들이 연이어서 터진다. 소설의 장르는 미래 SF물에 초능력물. 때문인지 이야기의 스케일도 상당하다. 세계 각국의 초능력자들이 나오고 우주에 미사일을 날려보내며, 각 나라들은 달의 영역을 나눠 점령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 속 초능력자인 데비안트는 2020년대 한반도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데비안트의 발현 원인은 방사능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며 불안, 스트레스,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이 능력 발현을 촉진시킨다. 대개는 정서불안이 심해지는 청소년기에 능력이 처음 발현하며 30세를 전후로 약해진다.(533p)


이런 가운데 소설은 데비안트 19살 소녀인 '신화경'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달에 있는 수면 캡슐에서 눈을 뜬 화경은 왜 달에 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인공인 신화경은 슈퍼 데비안트 급으로 분류되는 강력한 텔레파스다. 타인의 생각을 읽고 타인과의 공명을 할 수 있는 능력자인 텔레파스지만 여전히 상황 이해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보니 달이었고, 누군가가 화경을 죽이려 하고 있으며 달에 함께 있는 사람들도 공격당하는 상황이다. 공격당하는 자는 모두 데비안트들로 상황파악이 안되긴 마찬가지. 오직 그들 모두가 데비안트들이고, 예카테린부르크라는 곳과 관련된 기억이 인위적으로 삭제되었다는 사실만 파악한다. 그 와중에 화경을 포함한 데비안트들은 그들 중 휴머노이드가 있다는 걸 알게되고, 휴머노이드를 통해 자신들을 공격하는 게 전 세계의 핵무기와 데비안트를 통제하는 UN산하 독립기구 IAEDA라는 사실을 전해듣는다.


한 자리에 모인 데비안트들의 위기상황에서 각 데비안트들의 이야기, 그리고 과거의 '신화경' 이야기, 화경이 몸담았던 단체 '혁민이들' 이야기, 그리고 다시 달로 돌아오는 대장정이었다.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책이지만 한 번 붙잡으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진입장벽이 있어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했던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도대체 화경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죽은 게 분명했던 유영이 왜 달에 있는 화경의 옆에 있는지, 데비안트의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했던 혁민이들의 끝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틈만나면 책을 읽어나갔다. 설정도 흥미로운 점이 많아 더 그랬다.


데비안트라고 불리는 능력자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른 이명도 가진다. 심리상태와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텔레파스, 공간을 이동시키는 점퍼, 흔히 염력이라고 부르는 힘을 사용하는 키네신스, 투시 능력자인 보이안트. 하지만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랐기에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살아온 존재다. 특별관리대상이라며 아이들을 모아놓고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며 사회적 차별도 심하다. 시험, 취업에 제한을 받으며 차별적인 시선도 가득하다. 때문에 화경또한 능력이 발현되고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차별을 받아왔으며 데비안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던 어머니를 잃었다. 그 와중에 세상을 바꾸자며 손을 내민 유영은 화경 또한 바꿔놓고, 유영과 다른 데비안트들을 만나며 화경의 미래도 바뀌게 된다.


책은 투쟁의 역사와도 같았다. 소외된 이들에게도 힘을 나눠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책을 이끌어가는 데비안트들은 능력이 아니었다면 사회적 약자이자 편견의 희생자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화경은 아버지가 없었고, 같이 활동하던 단원은 말이 서툴렀으며 다들 각자의 비밀을 안고있기도 했다. 때문에 한 사람씩 이야기를 진행할 때마다 데비안트가 아닌 그냥 사람으로 공감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이 어리고 미숙한 느낌이 많이 났던 소설이다. 대부분 10대의 나이라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소설에 영웅담이나 과한 부담을 짊어지고 비범한 의지로 세상을 이겨내가는 주인공은 없다. 왜 하필 나였는지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며 구르고 깨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덕분에 보는 내내 현실적인 답답함도 함께했다. 눈앞에 투쟁해서 쟁취해야 할 목표가 있음에도 그 목표까지 가는 길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며 마침내 분열한다. 때문에 그 누가 지도자였는지와는 상관없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이 안타깝고 애달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 다정함이 있었던 주인공 화경은 텔레파스의 능력 때문에 모든 이의 절망을 공유하고 무너지는 와중에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복잡해보일 수도 있는데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다.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갈등상황이 계속 벌어질 때는 지치는 감이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듯한 스케일과 묘사 덕분에 더 흥미진진했다. 인물들 간에 얽히는 이야기도 인상깊었고 마지막에 반전 격이었던 이야기도 놀라웠다. 그 밖에 중간중간 유튜브 형식을 빌려와 댓글을 보여줬던 점이나 파괴와 절망을 나타내는 편집된 페이지도 재밌어서 기억에 남았다.


혁명은 쿨하지도 핫하지도 않았다.

더럽고 지루한 일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책으로 배운 역사 속 대격변의 장막 뒤에서 어떤 복잡한 과정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금세 세상이 뒤집어질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단단히 뿌리내린 현실은 조금도 움직여주지 않았다. - 3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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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정으로 1 스토리콜렉터 10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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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유명한 타우누스 시리즈의 신작이다. 이번으로 10번째인 타우누스 시리즈는 2권이 완결로, 역시 만만치 않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번 권은 '영원한 우정으로'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죽은 사람은 출판계와 관련이 있으며 잦은 문제를 일으키는 등 인성이 좋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이름은 하이케로, 그녀는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죽었다. 그런데 하이케의 친구이자 용의자였던 한 명이 목숨을 잃으며 용의자가 확 증가하며 타우누스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피아는 또 진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벌써 10권의 시리즈를 냈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번에 몰아보지 않고 나올 때마다 챙겨봐서인지 그리 길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하나하나 꼽아보니 많기도 하다. 어쨌든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어서, 또 마을에선 어떤 기묘한 일이 벌어지게 될까 기대하며 읽게 된다. 이번 시리즈 역시 사건의 진상은 모두 2권에서 밝혀질 모양이다. 천천히 해결하는 듯하면서도 꼬여가는 사건이 앞선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작가가 깔아놓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진실이 나오는 식이라고 해야할까.


아마 시리즈를 다 챙겨본 사람이라면 이번 권에서 뜻밖의 사실을 접하게 될 수도 있다. 바로 피아의 전남편 헤닝이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밖에 피아 경위와 좋은 직장 파트너인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 반장의 이야기도 등장하며 반가움을 더한다. 프롤로그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정체를 찾는 재미도 있었다. 타우누스 시리즈를 보면서는 한번도 범인을 맞춘적이 없어서 정신없이 읽기 바빴던 게 더 크지만 빨리 '영원한 우정으로'라는 제목의 뜻을 밝혀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만약 타우누스 시리즈를 처음 본다면 독일 작가라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생소한 편일 것이다. 계속 읽다보면 대충 감이 잡히긴 하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다. 나는 앞선 권들을 읽으며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앞에 등장인물들이 정리되어 있는 걸 보고 굉장히 반가웠다. 역시나 이번 권을 읽으면서 앞에 인물 정리를 해둔 부분을 보고 페이지를 왔다갔다 했다. 1권에선 아직 사건이 밝혀질 기미가 없고, 용의자가 수두룩 등장하는 바람에 2권도 이어서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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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죽어야 사는 헌터 1
네이다 지음, Bill.K 그림, 신노아 원작 / 판시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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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웹툰이다. 원작은 현대판타지 소설로 주인공인 ‘김공자’’가 F급 헌터에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SSS급 죽어야 사는 헌터'의 세계관에선 다양한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있고, 그 헌터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탑을 오른다. 다양한 스테이지로 구성된 탑을 오르는 헌터들에게 랭킹이 매겨지는 세계, 그 곳에서 김공자는 스킬 하나 없는 말단 F급 헌터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랭킹이 높은 헌터들에게 열광하며 많은 관심을 가진다. 


특히 랭킹 1위 헌터 '염제'에 관한 소식은 TV나 신문을 뒤덮다시피 했고, 김공자도 그 모습을 일상처럼 보며 지낸다. 인성이 개차반이지만 랭킹 1위라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염제. 세 평짜리 단칸방에서 사는 김공자가 염제인 유수하를 부러워하는 건 당연했다. 김공자는 염제의 재능을 부러워하며 그가 가진 스킬이 자신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김공자의 앞에 스킬카드가 생성된다. '당신의 추한 질투심에 탑이 경악하여 스킬을 던져줍니다'라는 알림창과 함께 나타난 카드는 적의 스킬 중 한 개를 복사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S+급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 카드에는 심상치 않은 발동조건이 있었으니, 바로 스킬이 주인이 죽어야만 발동된다는 것이다. 운빨 똥망이라며 절망하던 김공자. 그러던 차에 김공자가 유수하의 손에 목숨을 잃고 24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귀 스킬을 복사하게 되며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웹툰 단행본 1권은 1~10화의 연재분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로 치면 극 초반부이며,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웹툰의 내용은 빼곡하다 느낄 정도로 알찼다. 주인공인 김공자가 어떻게 해서 각성하게 되었으며, 유수하의 손에 죽은 뒤 죽은 시간으로부터 24시간 전으로 돌아온 것, 염제의 민낯을 확인한 공자가 염제를 죽이겠단 일념으로 4090번 자살해 시간을 되돌린 것, 마침내 염제를 죽인 후 검성에게 살해당하며 검의 성좌라는 A+ 스킬을 복사하고 '검제'라는 배후령을 얻으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까지. 사건들이 쉴새없이 터지고 이어져서 빠른 호흡으로 볼 수 있었다. 일러스트도 굉장히 잘 뽑힌 편이라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도 기대중이다.


처음 원작 소설을 봤을 때는 뭐 이런 미친 놈+찌질한 놈이 다 있나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근성만은 최고였다. 상상했던 장면을 웹툰으로 보는 즐거움도 한 몫했지만 일러스트로 내용을 잘 살려서인지 더 몰입해 볼 수 있기도 했다. 이정도 호흡이라면 웹툰 단행본이 20권은 너끈하게 넘을 것 같은데, 탑의 마지막까지 멋진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투씬도 좋았고 공자 캐릭터의 매력도 잘 살리고 있어서 웹툰으로 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뒷내용이 진행될 수록 사건의 스케일도 커지고 매력적인 인물들도 등장한다는 걸 알아서인지 연재될 날이 기다려진다. 말단 헌터에서 확고한 랭킹 1위가 될 공자의 여정 또한 기다려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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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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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세를 줬다는 책 소개를 봤을 땐 그냥 판타지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배경은 평범한 현대다. 현대의 낡은 단독주택에 악마가 세입자로 들어온 것이다. 사람 이름이 악마인 게 아니라 정말 악마다. 그러니까 단독주택의 문 안쪽은 사후에 갈 수 있는 지옥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한쪽이 지옥이 된 후 집 안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지옥에선 죄값을 치루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리고, 문을 통해 종종 죄인들이 탈출하기도 하며, 이승에서 남겼던 음식을 모아 쓰레기통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이 주방에 등장하기도 하고, 지옥의 열기를 버티지 못해서 저절로 열리는 문짝을 통해 온갖 종류의 지옥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럼 도대체 왜 인간 세입자도 도망칠 낡고 불편한 단독주택에 지옥이 생겼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하다. 집주인인 할머니가 지옥의 리모델링으로 죄인을 둘 곳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고 빈 방과 남는 공간을 빌려주겠다 악마와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서주'는 악마에게 방을 임대해 준 할머니와 사는 동거인이다. 남들은 모두 손녀로 알고있지만 사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이며, 입은 걸고 행동은 험하나 정이많은 할머니에게 주워져 손녀노릇을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던 어느날 세입자가 하나 둘 나가고 빈 방이 많았던 할머니의 집에 새로운 세입자인 악마가 들어왔다. 이후 이상한 일을 하나씩 목격하면서도 서주는 할머니 대신 하는 주택의 청소와 관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부분을 본 첫 소감은 와 담력 끝내준다였다. 나같으면 1분 1초도 그런 곳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옥에서도 빛은 있는지 세입자인 악마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처음 시작은 미숫가루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서주를 향해 '출근하기 전에 당 채우고 나가기♡'라는 쪽지가 붙어있던 미숫가루. 예쁜 유리잔에 땅콩가루까지 야무지게 넣어 만든 미숫가루를 서주는 먹고나서야 할머니 솜씨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이후 서주는 미숫가루를 만들어준 게 새로운 세입자 악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의외로 상식적인 악마와 친해진다. 뭐라고 불러야하냐는 악마의 말에 '저기요'라고 부르라고 말한 것도 소소한 재미포인트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의외였지만 소설은 뒤로 갈수록 이게 로맨스였던가?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분명히 미스터리물인줄 알고 시작했는데 뜻밖의 로맨스 분위기라 후에 뒤통수 엔딩인가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정도면 로맨스 비중이 별로 없어도 잘 읽는 독자로써 로판이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 읽고보니 제목도 로판이 생각나게 한다.


난 당신이 좋아하는 걸, 당신을 웃게 할 수 있는 걸 전부 할 겁니다.

그게 당신을 파멸로 몰아간다 해도. - 119p



소설 속 지옥의 모습은 괴기하고 그로테스크한 면도 있다. 지옥을 묘사하고 있기에 읽으면 한구석이 섬뜩해지기도, 징그럽기도 하다. 분명히 그런데 굉장히 잘 읽히는 편이기도 하다. 위트있는 문장들과 통통튀는 상상력에 더해 서주가 속으로 생각하는 100% 팩트에 기반한 신랄한 말들이 재밌었다. 술술 읽히며 넘어가는 책장을 보니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게 단번에 이해가 될 정도였다. 이 소설에서 큰 사건이 되는 건 할머니와 난봉꾼 아들, 서주와 악마다. 할머니는 친아들이 둘 있었고 하나는 죽은 상태다. 하지만 하나는 살아남아 돈문제로 말썽을 일으키며 집문제로 이미 여러번 다툼이 있었다. 하지만 서주는 할머니의 손녀처럼 늘 할머니를 챙기나 남이었다. 서류상 아무런 관계가 아닌 사람들. 그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주에게 족쇄가 된다. 서주에게 할머니는 하나뿐인 가족임과 동시에 남이라 계속 아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가며 상처받기도 한다. 이 부분이 바로 소설에서의 적절한 무게감이었고, 때문에 서류상의 관계없이 끝나는 악마와의 결말부도 인상 깊었다.


그 밖에 사려깊은 조연캐릭터들도 좋았고 지옥의 설정도 재밌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만난 언니는 진국이었으며 주인공 서주를 짝사랑했던 연하남은 귀여웠다. 늑골, 폐, 심장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를 한 조각씩 떼어와 필명을 지은 것부터 예사롭지 않은 작가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어떻게 문 뒤에 지옥을 불러올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덕분에 재밌는 상상력을 마음껏 엿볼 수 있었다. 중간에 나왔던 악마가 일을 하는 모습, 관리하는 곳이 있는 듯했던 내용, 이승에 오게 된 지옥이 어디까지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관한 설정 등등 세심한 부분도 눈에 띄어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의 결말만 보면 2권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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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야요이 사요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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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소년과 두 사람의 뒤를 좇았던 남자의 이야기 '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제목부터 독특한 소설이라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다. 그렇게 펼쳐든 소설은 복잡한 가정사와 함께 시작한다. 두 소년 중 하나의 이름은 다치하라 시후미. 시후미는 어머니인 미나코가 변변찮은 남자 아키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다. 사랑에 눈이 멀었던 미나코는 극단원에 난봉꾼이었던 아키라와의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좌절되고 부모님의 의사에 따라 재혼하며 시후미를 버린다. 시후미는 미나코의 부모 즉 다치하라 교고의 양자가 되고, 이후 시후미는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며 살아가야 했다. 이런 시후미의 사정을 잘 알고있는 유키는 교고의 아내인 다치하라 다카코의 조카였고, 교고가 공원에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사건으로 조사를 부탁받게 된다. 조사를 부탁해온 사람은 다카코로, 그녀는 남편인 교고를 살인한 범인으로 시후미가 수상하다고 말한다.


처음엔 굉장한 가계도 때문에 이게 뭔가 싶었던 소설이었다. 나는 현실 친족관계가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이렇게 꼬아두면 한 번에 기억하기가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 소설은 유키가 조사대상을 조금씩 늘려나가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유키는 시후미가 수상하다는 다카코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곧이어 터진 시후미의 생부 아키라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스스로 사망했다고 하자 언뜻 시후미의 얼굴에서 미소가 나타난 것을 보고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누구도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에 독특한 분위기와 성숙미를 가진 시후미. 그런 시후미에게 비밀이 있다는 건 유키가 시후미의 과외를 맡았을 때 우연히 보게 된 노트를 떠올리게 되면서부터였다.


소설 속에는 아픔이 많았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집안이지만 학대당한 소년 둘에 그냥 학대 그자체를 견뎠던 소녀 하나. 그리고 뻔히 보이는 사실을 모른체했던 어른들까지. 제목을 보고 섣부르게 따뜻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소설의 분위기는 서정적이면서도 차분하다. 극도의 통제 끝에 늘 평온한 표정을 가면처럼 쓰고 있는 시후미가 중심을 잡고 있어서인지 소설의 느낌도 시후미를 따라갔다. 차분하고 정갈하지만 무언가 숨겨진 것 같고 어느 한편으로는 찜찜하기도 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때문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부터는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유키가 찾아낸 진실이 과연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전체적으로 그려지는 동안 독자는 유키를 따라 진실을 유추해 볼 시간을 갖는다. 솔직히 숨겨진 비밀이 그리 충격적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풀어나가는 솜씨가 좋았다.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으로 시후미의 인간미를 드러내는 점도 마찬가지. 그 밖엔 남들이 모르는 우정을 쌓으며 미래를 계획했던 부분에서 굉장히 신중하게 나오는 성격들에 놀랐었다.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중학생이었는데 일찍 성숙해버릴 수 밖에 없었던 두 소년이 안타깝기도 했다. 가벼운 미스터리물이 아닐까하고 시작했던 소설이었으나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소설 내용이 진행되는 내내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 같아 어쩐지 여름과 잘 어울렸던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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