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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여기사 1~2 세트 - 전2권 ㅣ 블랙 라벨 클럽 27
안경원숭이 지음 / 디앤씨북스(D&CBooks)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폴리아나는 재혼한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서 난 여동생을 후계로 삼고자 하는 부모 때문에 14살에 기사가 되었다. 죽으라고 떠밀다시피 한 전장은 폴리아나의 나라 에하스와 옆나라인 쿠크다와 오랜 소모전 중이었다. 가족에게 외면받고 간 전장 또한 폴리아나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는 곳이긴 마찬가지였다. 에하스에는 여기사가 있기는 하지만 여권이 낮았던 것이다. 게다가 폴리아나의 외모는 박색이었다. 그럼에도 폴리아나는 남자들이 가득한 그 곳에서 악착같이 버텼다. 그렇게 6년을 지난 뒤, 언제 끝이날까 싶은 오랜 소모전은 갑작스레 등장한 아크레아에 의해 종료된다.
아크레아가 쳐들어 올 것을 예상한 폴리아나는 마지막 순간 부하들을 모두 도주시키고 홀로 붙잡힌다. 룩소스 1세는 그녀가 보여준 행적에 관심을 보이지만 이내 폴리아나가 여자라는 것을 알자 원정길에 처녀의 원귀가 따라다니면 곤란하다며 적당히 밤일 잘하는 병사와 붙여준 뒤 참수하라고 한다. 그러나 폴리아나가 맨몸으로 여러 병사들과 싸워 살아남자 룩소스는 폴리아나를 아까운 인재라며 거두고 윈터라는 성을 하사한다. 14살에 기사가 되어 20살에 드디어 자신을 인정해주는 주군을 만난 폴리아나는 그렇게 폴리아나 윈터가 되고 룩소스 1세의 꿈을 함께 쫓기 시작한다.
초반을 읽어나갈 때는 전장에서 구르는 여주에 박색이라는 설정 때문에 자칫 피폐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그러나 폴리아나는 스스로에게 당당한 여주인공이었으며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여자라서 차별받았지만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주변의 사람들이 여자도 아니다 했을 때 스스로 여자라고 말하는 폴리아나는 '여자니까, 여자라서'라는 편견 때문에 힘들기도 했으나 결국 자신을 온전히 인정해주는 주군을 만났다. 이후 동료와 부하들 간의 갈등으로 굴곡진 인생을 살긴 해도 폴리아나의 성격상 시원시원하니 잘 헤쳐나간다. 제국의 유일한 여기사 폴리아나의 성장기가 바로 '황제와 여기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폴리아나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캐릭터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신체적 조건도 좋지 않고 뛰어난 검술 실력도 없지만 폴리아나에게는 스스로 노력하고 결정하는 능동적인 캐릭터였다. 냉대받고 차별받는 현실에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나가는 그런 여자라서 글로 읽을 땐 참 멋있다라는 생각으로 봤는데 소설 속의 시대상은 안타까웠다. 그래서인지 그런 세계관에서 폴리아나가 점차 동등한 '기사'로써 서게 된 것을 보니 점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 밖에도 '황제와 여기사'는 뒤로 갈수록 웃으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룩소스 1세를 비롯해 나라 이름이 모두 과자이름을 연상시켰으며 조연들의 이름도 웃겼고, 외에도 내용 곳곳에 개그요소가 깔려있었다. 혹자는 한껏 진지한 전장에서 가벼운 어투가 섞여서 취향에 안 맞을수도 있고 개그코드가 안 맞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갔다. 비록 로맨스는 거의 없는 노맨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전쟁물+개그물+성장물+미약한로맨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소설은 그럼에도 재밌다. 황제인 룩소스 1세는 어딘가 허술해보이면서도 현군이라 폴리아나와 같이 절로 존경심이 생겨날 정도였고 룩소스의 친구이자 제1기사인 아이노도 약간 또라이 캐릭터인데 점점 웃겼다. 둘이 있을 때 모습도 귀엽고 재밌어서 폴리아나가 없었으면 정말 비엘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로맨스가 존재할 여지조차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연심에 있어선 한없이 다정한 남자 룩소스는 원정의 끝에서 폴리아나에게 반한 이후 폴을 강제로 속박하는 것이 될까봐 폴리아나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전전긍긍한다. 참 깔끔하게 사랑이라고 인정하는 데 반해 그 이후의 행보는 속시원하지만은 않았던 셈이다. 게다가 폴을 사랑하는 룩소스와 눈치없는 폴의 애정은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 폴리아나가 주군인 룩소스를 바라보는 마음이 존경하는 주군!이라면 룩소스에게 폴리아나는 행복해졌으면 하는 여자였다. 좋아하는 여자의 눈에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군주라 해도 남자가 될 수는 없었으니 룩소스의 마음고생은 예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룩소스 1세가 적당히 능글맞고 웃기고 배려깊은 군주라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그게 뒤로 갈수록 폴리아나를 너무 배려하느라 지랄염병(...)이 깊어졌으니..(연재내용 중에 나오는 병입니닼ㅋㅋㅋ) 좋아하는 여자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타입이라는데 기회가 없다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럼에도 웃긴 것이 사적인 마음이 전혀 없었던 폴이 벽치기를 하고 룩소스가 설레고, 폴리아나를 좋아했던 기사를 폴리아나가 퇴짜놨다고 하자 티나게 좋아하기도 했다. 이렇게 먼저 반한 사람이 남주인 룩소스라 그런지 '황제와 여기사'는 다른 로맨스와는 굉장히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론 철벽치는 폴리아나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어서 웃긴 동시에 룩소스가 안쓰럽기도 했다.

2권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제국이 된 아크레아의 황궁으로 돌아온다. 윈터 후작이 된 폴리아나는 그 곳에서 룩소스의 후궁을 지키는 근위기사가 된다. 앞서 나왔던 전쟁 이야기가 기사들과 동등하게 서기 위해 겪는 일들이었다면, 황궁으로 돌아온 폴리아나의 이야기는 '여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온 후궁 레베카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를 억누르는 것만을 배웠던 여자들은 예외인 폴리아나를 보고 서서히 인식이 바뀌고, 남자들 틈에서 여자라는 성별의 인식만 있었지 다른 여자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폴리아나는 레베카를 만나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다. 황제의 여기사가 아니라 황제와 여기사인만큼 두 사람 다 독립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더욱 색달랐던 이 소설은 가볍게 읽고 넘길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아 뭐라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도저히 참지 못해 연재를 달려가 보고 있는 나는 아마 이 소설이 끝까지 굉장히 바람직한 소설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름답고 아름다우며 또 아름다운 룩소스와 그런 룩소스를 주군으로만 보는 폴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도 당연히 궁금하니 하루빨리 다음 권들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