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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평점 :
'더 하우스'를 통해 시간을 넘어다니는 하퍼 커티스. 그는 시간을 넘어다니는 조건으로 빛나는 소녀들 즉 샤이닝 걸스를 죽여야만 한다.
더 하우스의 벽에 쓰여있는 9명의 이름 진숙. 조라. 윌리. 커비. 마고. 줄리아. 캐서린. 앨리스. 미샤. (48p) 자신의 필체로 적혀있는 그 이름들을 본 하퍼는 소녀들을 죽여야한다는 걸 깨닫는다. 한편 하퍼의 목표 중 한명이었던 커비 마즈라치는 몇 년전 하퍼의 공격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후 기자가 되어 자신이 겪은 사건이 연쇄적인 살인사건임을 추측하고 미약한 단서를 찾아가며 범인을 쫓기 시작하는데...
반짝거리는 예쁜 표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책의 분위기는 어둡고 잔혹하다. 소녀들의 살해범인 하퍼가 사이코패스라 그런 점도 있지만 대공황 시대의 시카고라는 시대상의 배경 또한 한 몫을 한다. 밑바닥에서 헤매던 하퍼가 더 하우스를 만나기까지 아니 더 하우스를 통해 시간여행을 하는 내내 묘사는 뭔가 암울함과 혼란스러움을 품고있었다. 사실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글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전개또한 그다지 친절하지 않아서 책을 읽는데 좀 힘들었다. 초반부터 하퍼-커비-커비의 신문사선배 댄-노숙자 맬-하퍼의 표적인 또다른 소녀들의 시점을 휙휙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시간까지 자유롭게 넘나든다. 덕분에 아무생각없이 소제목만 보고 읽었다가 2-3장을 넘어가서는 뭔가 이상한데하고 다시 돌아와 년도를 확인하는 일이 잦았다.
보통의 미스테리 추리물이라면 큰 사건이 앞부분에 일어나고 그다음 차례차례 범인을 쫓으며 해결을 하는 흐름이 익숙한데 샤이닝걸스는 이 시점이 뒤죽박죽이다. 하퍼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한 장점이긴 했으나 그 때문에 장면이 너무 휙휙 바껴서 불친절한 글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살인의 순서와 시간의 흐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큰 원인인 것 같다. 마치 책을 처음부터 읽어갔는데도 뭔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랄까..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내가 이걸 잘 읽을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나왔던 샤이닝걸스의 앞부분은 뒷부분보다 상대적으로 지루했다. 사건이 대체 언제 일어나는건가? 초조해하며 봤으니까.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읽기가 훨씬 나아졌다.
넌 빛이 나지 말아야 했어!라며 무차별 살인을 일삼는 듯 보이는 하퍼. 하퍼는 어린 샤이닝 걸스를 찾아가서 다시 만나러 올테니 기다리라는 이상한 말을 하고 성년이 된 아이가 있는 년도를 찾아가 잔혹하게 살해한다. 현장에는 살해된 피해자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샤이닝걸스와 연관이 있는 물품을 놔둔채.. 아마 전혀 뜬금없는 물건을 현장에 놔두는 건 절대 잡히지 않을거라는 하퍼의 자신감이었으리라. 이렇게 책에서는 하퍼의 정신상태가 직접적으로 확실히 나타나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의미부여를 하면 독자는 그저 추측할 뿐. 복선도많고 문장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초반에는 이야기의 감을 잡기가 정말 힘들다. 그렇기에 읽을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 스포일러를 어느정도 보고 읽는걸 추천한다. 안그러면 초반에 지치기 쉬울 것같다. 범인의 특이한 능력때문에 사건을 추적하는 커비가 중반을 훌쩍 넘어서까지 사건이 어떻게 된건지 감도 잡지못하니까...
책을 모두 읽은 후에도 몇 가지 의문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소녀들은 왜 빛이나며 왜 죽여야만 하는가? 더 하우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시간여행이 가능한가? 아무것도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하퍼의 망상일 뿐이라 치부하기엔 시간을 넘어다니며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현실로 치부하기엔 더 하우스가 왜 그런 이상한 조건을 요구했다고 생각하는지가 의문이다. 나에게 샤이닝 걸스는 끝까지 혼란스럽고 의문이 가득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범인을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붙잡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 때문에 무사히 이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마침내 더 하우스의 열쇠는 또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이제 그 열쇠가 불러일으킬 다른 사건은 어떨지 그리고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상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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