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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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한 책 소개와 소설과 위스키로 빚은 미스터리 판타지라고 해서 굉장히 궁금했던 책이다. 어떤 방식으로 소설을 풀어갈지 보고 싶었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막상 받아든 책은 쉽게 정체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 책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이름을 가진 책이 등장해 주인공인 '벤 슈워츠먼'이 집에서 책을 펼쳐드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후에는 주인공인 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책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거만 그려져서 대체 이게 무슨 내용인가 했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 약 100페이지를 넘어가야하는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TMI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묘하게 안읽히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가 없어서 지치는 감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벤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부턴 확 재밌어졌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책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의 정체는 미래 예언서에 가깝다. 주인공인 벤의 이름이 뒤표지에 적혀있고, 벤을 위해 쓰여진 책처럼 벤의 현재 상황과 해야 할 행동지침을 알려주고 있는 책. 처음의 벤은 이 책을 신뢰하지 않지만 책에서 말하는 상황이 현실에서 똑같이 펼쳐지자 책의 내용을 믿고 움직이게 된다. 책은 벤에게 '당신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으며, 위험에 처해있으니 당장 집을 떠나 움직이라'고 말한다. 믿지 못하겠다면 창문너머에 있는 파란 야구모자를 쓴 남자를 확인하라고. 결국 벤은 남자를 확인하고 집에 있던 위스키 병과 책을 챙겨 집밖을 나선다.



그렇다면 벤이 휘말린 사건이란 무엇일까? 사건은 벤이 가지고 나온 위스키 병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벤에게 온 위스키 병은 평범한 술이 아니었다. '하임 울프'라는 사람이 목숨을 잃기 전 유품으로 남겼다는 위스키 병에는 사람의 경험이 들어 있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기억이 아닌 생생하게 직접 체험한 듯한 경험. 울프는 술을 통해 사람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유통하는 일을 오래 해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울프 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고, 경험자들이라 불리며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어떤 누군가에게 속해서 일하기도 한다. 그렇게 경험자들과 전혀 접점이 없던 벤은 울프를 통해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책은 묘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독자인 나를 벤처럼 책 속 세계로 끌고들어가듯 말을 건네기도 하고, 수상한 책인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를 작성한 가상의 화자를 등장시켜 자신이 쓴 책을 '요아브 블룸'의 이름을 빌려 출판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요아브 블룸은 자신의 작품인 이 소설책에 등장해 벤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이런 구성 덕분에 책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김과 동시에 '경험이 담긴 술'들에 관한 이야기로 흥미진진함을 더했다.


사람의 경험을 사고 팔 수 있다면 어떤 경험을 거래할 수 있을까? 책에선 부유하고 직접 경험할 시간이 없는 고객들이 경험자들을 찾아 다양한 경험을 구매한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후 공감능력 상실로 경험을 판매해왔던 스테판도 그런 고객을 두고 있었다. 스테판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위험한 경험을 판매하고, 벤 일행이 오래 전부터 전해져내려왔던 다양한 경험과 그 경험들을 하나로 압축해둔 칵테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뒤를 쫓는다.



이 책은 경험을 구매해 다른 성격으로 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소설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도 구매만 하면 당장 자신의 경험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욕심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책 속엔 다양한 경험들이 거래된다. 그럼에도 그 경험들은 자신이 직접 부딪힌 일들이 아니기에 한계가 있으며,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를 얻는 것과도 같다. 술에 담긴 경험들은 철저한 판매용이기에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가 있을지까지 모두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경험이 담긴 술은 끝없는 탐욕의 목표물이 되기도 한다. 평생 경험할 수 없을 것들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언뜻보면 철저히 오락성으로 움직이는 책 같지만, 생각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경험으로 인한 변화를 직접 보여주면서도 경험을 사고 파는 것보다 직접 부딪히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끝도 모를 경험에 잡아먹힐까봐 적당히 자제하는 사람도 있고, 다시 일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후자쪽에 속할 것 같지만, 책을 읽고난 뒤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직접 경험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어쨌든 소설을 읽는동안 독특한 설정 덕분에 재밌게 볼 수 있었고, 주인공인 벤의 성격변화도 인상깊었다. 이외에 구성과 결말부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키니까. - 134p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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