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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 스물다섯 선박 기관사의 단짠단짠 승선 라이프
전소현.이선우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4월
평점 :
예전에 선원의 에세이를 재밌게 본 적이 있었다. 육지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뱃사람 이야기는 평소엔 접하지 못하던 이야기다보니 신기하기도 했었다. 그런 부분은 이 책을 쓴 작가도 똑같았나보다. 처음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스물다섯 선박 기관사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썼다는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다. 알고보니 선박 기관사의 이야기를 다른 작가가 쓴 것이었다.
브런치에서 일상적인 글을 쓰던 이선우 작가는 휴가를 나온 전소현 작가를 만나 특이한 소재를 만나게 된다. 이후 특이한 소재에 욕심이 난 이선우 작가가 책을 써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하며 시작된 책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때문에 책이 배를 타는 여성에 3등 선박 기관사라는 소현의 시점으로 쓰여진 게 아니라 신기하기도 했다. 독특한 형식이었으나, 중간에 일반인이 끼어 선박과 기관사라는 직업을 이해하고 공부한 뒤에 전하는 이야기라서 좀 더 쉽게 내용 전달이 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다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기관사 이야기는 역시 독특하고 재밌었다. 주변에 뱃사람이 하나도 없는 나같은 사람은 이런 책을 일부러 보지 않으면 전혀 모르는 세계라서 흥미롭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책은 여성 기관사라는 점이 더욱 독특했다. 때문에 대부분이 남자인 배 위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는 치열하면서도 한편으론 짠하기도 했다. 30명이 함께 일하는 선박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선박에서도 여성 기관사가 흔하지 않다보니 홍일점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한다. 이것도 완전 금녀의 구역에서 나아진 것이라는데, 자신이 잘못하면 미래의 후배 여성 기관사를 뽑지 않을까봐 늘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지금은 기관사로 다음 미래도 준비한다지만, 처음부터 기관사의 길을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공부 좀 한다는 학생이었고, 성적 높은 고등학교에서 좌절을 맛본 뒤 수능을 망하고 의대 대신 차선으로 선택한 게 바로 한국해양대학교였다고 한다. 부모님의 권유로 가게 된 대학이었지만 적성에 맞았는지 기관사가 되었고, 드넓은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배에서 일한다는 건 고열과 소음 속에서 일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은 예전에도 들어보았지만 이 책에선 그 외에도 좀 더 배에 관한 일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배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지 점검을 한다거나, 수리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하고 배 위에 승선하면 2주동안은 꼼짝없이 배에만 있어야하기에 일어나는 문제들도 수습해야했다. 그 분야도 다양해서 용접, 선반, 엘리베이터 점검 등등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튀어나왔다. 그 중에 화장실 문제가 정말 의외였는데 노후된 배라 변기고장이 잦고 배관이 막히는 일이 있어 파이프를 뜯고 변기를 뜯으며 고쳐야 한다고. 아무래도 바다위에 나가면 배가 하나의 나라인 셈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뱃사람들이 해결해야하는 것인 모양이었다.
심리적인 문제도 물론 존재한다. 책 속 주인공인 소현은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연애도 해야하며, 가족들과도 연락해야 한다. 뚝뚝 끊기는 인터넷을 붙잡고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영상통화인 경우 서로의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고 전송이 늦어 말이 겹치기도 한다. 때문에 주로 연락하는 건 카톡이나 이메일 정도. 실제로 이 책을 쓰면서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는데도 굉장히 고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잘 맞을 것도 같았다.
스마트폰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선상에서는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고, 여가시간에 책을 읽으며, 컬러링북 프라모델 조립 레고 등 각종 취미생활이 등장한다는 말을 들으니 지금 시대엔 생소하면서도 재밌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런 취미류를 좋아하고 외로움을 그다지 타지 않아서인지 망망대해에 배를 탔다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음문제 때문에 배는 절대 못 탈것 같지만 이런 책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런 걸 새로운 세계에 관한 동경이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책을 읽는 내내 씩씩한 기운이 느껴져서 좋았다. 규율이 엄격한 군대식 문화를 지나 여성인력이 드문 곳에서 일하고 있어도 주눅들지 않고 굳세게 살아가는 의지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덕분에 한 장씩 넘겨보며 커다란 배와 그 위의 모습을 절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중간중간 말랑한 이야기도 있었고, 묵직한 이야기도 있었던 책은 그야말로 단짠단짠 승선 라이프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