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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로 읽는 세계사 - 25가지 과일 속에 감춰진 비밀스런 역사
윤덕노 지음 / 타인의사유 / 2021년 11월
평점 :
과일에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들을 모아놓은 책 '과일로 읽는 세계사'. 제목 그대로 세계사에 과일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과일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과일 책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책은 과일 그 자체에 관점을 둔 반면 이번 책은 이야기에 좀 더 중점을 둔 느낌이었다. 요즘은 흔히 만나볼 수 있어 사소하게 생각했던 과일이 의외로 세계사의 굵직한 부분을 담당하기도 하고, 지금과는 위상이 엄청나게 다르기도 하고, 동양과는 다른 상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등등의 이야기를 보면서 계속 좀 더 알고싶은 욕심이 났던 것 같다.
책 속에 나오는 과일의 종류는 총 25가지. 사과, 배, 귤, 참외, 파인애플, 딸기, 코코넛 등등. 다양한 종류가 나오지만 쉽게 만나볼 수 없는 과일은 하나도 없었다. 마트에서 볼 수 있는 과일, 우리가 제철 과일이라고 찾아먹는 과일들 이야기가 많아서 그만큼 친숙하게 볼 수도 있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이런 점을 노린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어쨌든간에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과일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꼭 맞는 선택이 될 것 같다. '역사'라는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과일 이외에 약과 풀 음식 같은 책도 읽어봤는데 왠지 이 책은 과일이 소재라서 좀 더 상큼한 느낌도 들었다. 책을 읽다가 아 과일 먹고싶다라는 생각이 종종 드는 걸 보면 말이다. 동서양 구분하지 않고 퍼져있는 과일이니만큼 서양에서 과일이 의미하는 부분을 짚어주는 점도 좋았다. 씨가 많은 딸기가 다산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아이를 잉태한 엄마의 모습을 연상시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인들이 성모마리아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부분도 덕분에 처음 알았다.

개인적으로 책을 보면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파인애플 편이었다. 지금은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설탕이 귀한 사치품이었던 16~17세기에 등장한 파인애플은 그야말로 환상의 맛이었다고 한다. 특히 왕관같은 풀의 생김새와 더불어 따뜻한 곳에서 자란 과일이라 구하기 힘든 희소성까지 더해져 파인애플은 파티 테이블에 장식용으로 놓아두는 게 유행했다고. 하지만 그 비싼 가격이 문제라, 파인애플을 대여해주는 아주 독특한 사업이 등장한다. 파인애플을 장식했다가 요리가 들어오면 빼내서 또다른 파티장으로 보내주며 돈을 받는다니 신기하기도 한데, 그렇게 대여하던 파인애플을 썩기 직전에서야만 먹었다고 하니 현대인의 시선으론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흥미롭기도 했다. 이외에도 스파이임을 숨기려 열심히 야생딸기를 연구해서 품종개량에 이바지해 오늘날의 딸기를 탄생시킬 수 있던다는 한 군인의 이야기나 블루베리를 먹고 시력강화를 해서 야간에 적국의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 있었다는 소문을 이용한 부분, 우리 조상들이 주구장창 먹었다는 참외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그러고보면 지금도 끊임없이 품종이 개량된 과일이 나오고 있다. 때로는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때로는 크기를 키우기 위해, 또 때로는 번식을 쉽게 하거나 좀 더 손쉽게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유야 가지각색이겠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과거 몇 세기를 거쳐 계속 이어져내려왔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부분이 제일 신기했다. 그런 부분을 보면 어떻게 좀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까는 인간사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것 같다. 세계사에 음식이 빠질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살기 위해 꼭 먹어야하는 음식들, 그 중에서도 오랜 세월 사람과 함께한 과일들의 이야기를 모아두어 그런지 좀 더 친숙한 세계사를 읽은 느낌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