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트론헤임, 위베르 슈비야르 - 머물다

머물다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루이스 트론헤임 지음, 위베르 슈비야르 그림, 이지수 옮김 / F(에프) / 2021년 7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휴양을 위해 온 바닷가. 하지만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남자 롤랑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갑자기 날아온 간판에 목이 날아가버린 것. 처음 이 장면을 보고 물음표 몇개를 띄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목이 잘린 장면이 너무 비현실적인 건 둘째치고 바로 옆에 있었던 여자 파비엔느의 PTSD는 어쩌나 싶고.. 정신을 놔버리지 않은게 용하다 싶었다. 어쨌든간에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 단 5페이지 내에 벌어진 뒤로 파비엔느는 혼자 여행지에 남아 롤랑이 자신과 함께 하기 위해 수첩에 적어둔 여행 계획을 보며 혼자서 바닷가 이곳저곳을 다녀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그래픽 노블이다보니 등장인물의 내면묘사가 그리 자세히 나오지 않았겠지만 주인공 여자인 파비엔느가 갑작스러운 사고에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마저 하겠다 결심했는지는 다 읽은 지금도 모르겠다. 파비엔느만의 이별 과정이었는지, 여행지를 떠나 장례식장에 가면 정말로 연인을 보내준다는 게 실감나서 피할 생각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모종의 이유가 있었던지.. 아마 제일 첫번째 이유에 가까워보이기는 한데 정확한 대사가 없다는 점은 왠지 아쉽게 느껴졌다. 연인을 잃은 파비엔느의 앞에 갑자기 등장한 남자 쪽도 초반부엔 너무 비호감이라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뒤에가선 유부남에 서툰 위로를 건네는 관광지의 지역인일 뿐이란 사실을 알았으나 일단 성격이 확실한 호감상은 아니라서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말하긴 애매했다. 그래도 삶은 살아가는 것이라는 위로의 메시지는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이자 기막힌 사고로 떠들썩해진 관광지에서 남자의 죽음은 유명사건이 되어있었고 때문에 파비엔느는 종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연인의 일을 듣게 되기도 한다. 파비엔느의 앞에 나타났던 남자도 롤랑의 죽음을 언급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파비엔느가 죽은 남자의 연인이라는 걸 나중에 알고서 서툰 위로를 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말부쯤엔 파비엔느의 일정에 같이 어울려주기도 한다. 아이를 가질 계획을 세우고 행복한 미래를 꿈꿨으나 비극적으로 이별한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과, 반대로 남겨진 사람의 삶에 대해 찬찬히 볼 수 있었다. 분명 비극적인 일을 겪었음에도 계획했던 여행지의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파비엔느의 이후이야기가 없어서 여행지에서의 이별을 무사히 넘겼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쩐지 앞으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휴양지에서 보여줬던 파비엔느의 표정과 여행지에 남겨두고 떠난 롤랑의 짐과 수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