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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솔직히 가진건 돈 밖에 없는 성격파탄 치매탐정 할머니라는 소개글을 믿지 않았었다. 치매인데 탐정이 가능해? 그냥 그런 척 하는거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소설책 배경이 심상치 않다. 할머니 할아버지 즉 어르신들 위주로 돌아가는 마을이자 곳곳에 웨이터, 바텐더, 마트 점원 등등 어르신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마을 도란마을. 도란도란 정답게 지낼 수 있게 만든 마을이라는 도란마을은 치매 노인들의 마을이었다. 하나 밖에 없는 출입구를 두고 일상 생활을 하며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한 고급 노인 요양 병원인 셈이다. 때문에 책의 주인공이자 가벼운 치매 증세가 있는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이 마을이 갑갑하고 거대한 연극 무대처럼 보였다. 치매 노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유롭게 다니지만 의사와 간호사는 마을에서 각각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마을은 꾸며진 게 사실이었으니까. 때문에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감시하듯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의료진도, 생색내듯 찾아오는 치매노인들의 부유한 자녀들도, 봉사를 구실로 방문하는 노인들의 손주들도 달갑지 않게 여겼다. 달달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마을 일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을 뿐. 하지만 어느 날, 도란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가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지루한 일상을 바꿔 놓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사건이라곤 치매 노인이 터뜨리는 것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은 좀 예상 밖이었다. 쓰레기장에서 아기의 사체가 발견된 것. 하지만 소란스러움도 잠시였고 마을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굴러간다. 이에 범인 찾기를 시작한 할머니에게 다가온 한 소년. 마을 의사 중 하나의 아들이었던 소년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굉장히 조숙해보였고 뜻밖에도 할머니와 함께 있고 싶다 말한다. 할머니 입장에서도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직원보다야 꼬마가 나은 게 사실이었고, 요양원 관계자들과 딜을 통해 꼬마와 할머니 콤비가 결성된다. 정을 주기 싫다며 그저 꼬마와 레모네이드 할머니로 남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괴팍하지만 통찰력있고 행동력까지 있으며 추리력도 상당했던 레모네이드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 문제란 약간의 치매증세와 혼자 생각하고 혼자 일을 진행한다는 것. 덕분에 할머니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파트너로 똑똑한 아이가 붙어있어서 어쩐지 다행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곳곳에 사회의 어둑한 면도 비추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기도 했다.
부유한 자녀들이 골프를 치러 왔다가 찾아오기 좋게 산에 지어진 고급 요양원, 요양원 안에서 일어나는 치매 노인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성추행, 자녀가 생색을 내기 위해 한 번씩 집에 모시고 갔다오면 항상 발작을 일으키는 치매 노인, 여자와 아이에게 폭행을 일삼았던 부유층의 남편 등등. 굵직한 스포일러들을 빼고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정도라 아무리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활약하는 장면을 보고 꼬마의 귀여운 임기응변을 보면서도 유쾌하게만은 볼 수 없었다. 일단 레모네이드 할머니도 사채업을 했던 사람이고 조수인 꼬마도 상처가 있는 아이라 무결한 인물이 없다시피 하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분명한 악역이 존재하긴 했다.
책 속에선 할머니의 과거사가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할머니의 과거사에 궁금한 부분이 있기도 했는데 곁가지라 쳐내진 것인지 깊은 이야기가 나오진 않는구나 싶었다. 할머니의 성격과 신념은 유언장 하나에 다 드러났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할머니답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정도 해소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결말을 이렇게 낼 줄은 몰라서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결말과 내용 또한 할머니 다운 이야기 같기도 했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 부분에선 남의 이야기하듯 구어체로 장면을 보여주고 중간부터는 시점이 확확 바뀌면서 진행해서 이야기들이 조금씩 끊기는 느낌도 있었으나 사건 진행에는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기도 했다. 어쨌든간에 책을 다 읽은 후,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약간 비딱하지만 통쾌한 성격이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