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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평점 :
물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 형체를 보면서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소설은 언제나 설레게 만드니까. 그러나 마냥 재미를 위한 소설이 아니었음을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깨달았다. 어딘가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대로 옮겨둔 듯 가족이 끌려가고 어머니를 잃었으며 그에 관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담담히 말하는 주인공 소년. 앞 장을 조금 읽다보니, 소년이 살고 있는 곳은 어딘가의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아니고 논픽션 속 그러니까 미국의 남부지방 어디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흑인 노예제도가 만연했고 그들의 인권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을 때쯤 말이다.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그래서인지 소설은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판타지적 요소가 섞여있다는 정보를 알고 시작해서 그나마 나았지 만약 몰랐다면 암울해보이기만 하는 소년의 앞날에 절로 숙연해진 기분이 될 것 같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마냥 희망차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담배농장에서 온종일 일을 하고, 주인집에서 일을 하며 가족을 만들어도 언제 내 가족이 주인의 의사에 따라 팔려나갈지 모르는 삶. 주인공 소년 하이람은 백인 아버지를 두고 있지만 다른 흑인들처럼 하잘것없는 노예 취급을 받는 건 똑같았다. 다만 하이람에겐 천부적인 기억력과 훗날 얻게 될 초능력이 있다는 것만 달랐을 뿐이다.
가족도 사랑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삶 속에서 하이람은 생각한다.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노예 해방 운동을 하고 있다는 언더그라운드를 찾아가면 어떨까하고. 그쯤에서 나는 이제 소년의 영웅적인 에피소드들이 펼쳐질줄로만 알았다. 다른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 대개 그렇듯, 불합리한 세계 속에서도 꿋꿋이 능력을 발휘해 살아남을 거라고. 책의 1/3쯤이란 점도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하이람은 함께 탈출한 사랑하던 소피아와 떨어져 다른 노예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은 하이람은 구했지만 소피아는 구할 수 없단 절망적인 소식만 들려줄 뿐. 소설을 읽으며 사방이 막혀있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가족이라는 이유가 족쇄가 되어 팔려나가게 하지 않으려면 본인이 더 열심히 일해야하고, 어느 순간엔 그런것도 소용없이 가족은 헤어지게 된다. 노예니까, 주인의 자산이니까, 노동력의 가치밖에 없으니까. 그런 이유들로 서로가 서로에게 감시망을 세우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 논픽션이라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이람의 초능력인 '인도'는 순간이동 능력이다. 본인 이외에 사람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하이람의 능력. 그러나 주인공의 능력은 초반부터 발휘되지 않는다. 목숨이 위태로울 때 처음으로 발현된 능력은 하이람의 삶을 또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음에도 마지막까지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극적인 변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하이람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이라는 '인도'의 능력을 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랬다면 좀 더 빨리 좀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작가의 염원이나 희망같은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어쨌든 하이람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새 이만큼 자랐구나 싶을 정도로 바뀌는 모습이어서 마지막 모습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최악은 그런 일에 대한 기억이 우리를 바꿔놓는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런 기억에서 도망칠 수 없으며, 그 기억이 우리의 끔찍한 일부가 되고 만다. - 51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