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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읽는 도시
장혜영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8월
평점 :
길거리에 있는 간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타고난 길치였던 나는 어디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길치임에 한 몫을 하는 건 간판을 쳐다보고 다니지 않는 습관 때문임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생각이 날 때마다 의식적으로 가게의 간판을 보고 다니곤 한다. 간판의 형태와 색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때쯤이었다. 색색의 간판들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낮에도 어떤 간판은 화려했고, 또 어떤 간판은 세월의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책 속에서 본 간판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읽는 도시'라는 소제목과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이라는 제목처럼, 사라지지 않고 역사를 이어온 간판들의 이야기. 저자는 특별히 1970~9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간판들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 지은 간판의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뜻을 궁금해하고 읽는 독자가 되기로 했다고. 그저 한 자리에 있을 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간판이 담은 이야기들은 그렇게 시작한다.
지금은 프린팅된 간판들이 많이 생겼으나, 오래 전 간판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톱을 이용해 아크릴판을 글자 모양대로 썰고, 한 면 한 면 이어붙이는 작업.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간판이 많았다. 간판 장인들은 간판에 맞는 서체까지 손수 디자인해야했고 색을 직접 조합해 페인트칠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 프린팅하는 지금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른 방식이었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직접 붓글씨를 써서 간판을 만들어내는 장인의 이야기였다. 서체가 좋은 장인이 인근 지역을 돌며 간판의 글씨를 써주고, 때문에 형제처럼 만들어진 간판들의 이야기. 프린팅되어 비슷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정감있으면서도 하나의 문화권을 상징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더욱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 밖에 미용실 간판에는 파마머리를 한 서양 여인의 이미지가 표현되어 있다거나, 다방 간판에는 찻잔 위에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그림이 표현되어 있는 등 간판에 표현된 그림에 어느 정도 공통된 양식이 있다는 것도 기억에 남았다.
간판은 그야말로 역사를 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며 간판 만들기는 더 쉬워졌고, 때문에 더 일률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역설적이지만.. 어쨌든 지금의 간판들도 역사를 담아가게 될 것은 분명해보인다. 고르고 골라 정하는 가게의 이름에는 저마다 뜻이 담겨있고, 가게의 이름이 불리며 다른 의미를 담게 될 수도 있으니까. 어쩐지 오래된 간판을 보게 될 때면 간판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질 것 같다.
가게는 시대의 삶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간판 사진을 찍으면
한 폭의 풍속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풍속화가 당시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것처럼 간판 역시
그 당시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12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