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을 생각하다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이 정말이 아닐까 하고. 분명 위로를 해줘야 할 상황인데 속으론 기쁘고,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서 안심하고.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니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는 묘한 안심과 함께 이런 현상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하는 단어. 비단 독일어 뿐만 아니라 고대의 다른 나라들에게서도 이런 단어는 존재해왔다. 프랑스어로 주아 말린, 네덜란드어로는 리드베르마크, 러시아어로는 즐로라드스트보, 우리나라는 쌤통. 쌤통이라는 단어를 보니 이 오묘한 감정이 확 친근해졌다. 2000년도 더 전의 로마인들도 '악의 있는 사람'을 가리켜 '말레볼렌티아'라고 불렀으며, 그보다 더 전에 그리스인들은 '에피카이레카키아'라는 말로 치욕에 대한 기쁨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니 이러한 감정은 인간의 본성에 오래전부터 내재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 항상 큰 노력 없이도 인기를 끌던 친구가 애인에게 차였을 때

- 정원의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어디에 묻어놓았는지 까먹을 때

- 고상한 클래식 음악만 듣는다고 늘 자랑하던 직장동료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이팟에 저장된 음악을 틀었는데 그가 직접 불러 녹음한 대중가요가 흘러나올 때


어쩐지 얄미운 사람이 작은 불행을 당하면 고소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내용이 책에도 잘 나와있었다. 선한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는 말을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샤덴프로이데는 일상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모르는 사이 교묘하게 감정을 이용당하기도 하며 오락거리로 소비되기도 한다.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은밀하고 부정적인 느낌의 감정이지만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다. 실례로 나는 내 집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반려동물들이 집에서 사고치는 모습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것 또한 샤덴프로이데의 일종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실수를 보고 웃는다던지 혹은 불행에 빠진 친구를 위해 나의 불행담을 풀어놓는 것 또한 마찬가지. 생각지 못한 일들을 책 속에서 만나다보니 누구나 샤덴프로이데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편이 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샤덴프로이데로 무슨 이득을 보길래 본성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것일까. 얼핏 보면 드러내서는 안되는 감정이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처럼 생각되지만, 생각외로 이점도 있다. 혼자 실의에 빠지기 보다는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실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위안 받기도 하고, 실수를 보고 약간의 우월감을 느낌으로써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묘한 일이지만 잘난 척 하거나 위선적이거나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 벌을 받으면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이 정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모두가 선하지 않다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우며, 샤덴프로이데를 이해함으로써 얻는 이득도 분명히 있다.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샤덴프로이데를 느꼈다면 내가 부족하지 않은 적수로 보였다는 뜻이며, 샤덴프로이데를 알아채고 왜 그렇게 달콤한 만족감이 느껴지는지 이해한다면 그 밑에 깔려있는 괴로운 감정까지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 사례들을 보니 정말 내가 이렇게 샤덴프로이데를 잘 느끼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도 그렇게 될 거라고 예언을(...)했는데 정말이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느꼈던 감정들을 돌이켜보면 샤덴프로이데일 때가 있었고, 주변을 둘러봐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연예인에게 작은 꼬투리가 생기면 재밌어한다는 점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시 중 하나라고 하지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감정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감정을 알아채고 인정함으로써 다스려지기도 한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나만 왜 이러지라고 괴로워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나 이 책에서도 마지막엔 잘못된 감정이니 그냥 다스리라고 하지 않을까 슬쩍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시원스럽게 인정해버리고 털어놓기까지 하라니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은밀한 감정을 끄집어내어 보여주어 오히려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고, 좀 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시간이었다.


샤덴프로이데를 느낀다고 해서 나쁜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다.

이런 감정의 유연성은 인간이 가진 비범한 능력이며, 도덕적 경직성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더 진실하기까지 하다. - 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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