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끄러지는 말들 -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백승주 지음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평점 :
15년 전에 '한국어강사 양성과정'을 한달 간 공부하면서,
평상시 공부하던 우리 말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
게다가 나는 '국문학'전공자인데, 평상시 모국어 사용자로서 우리말을 보는 시각과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 외국인의 시각에서 우리말을 바로보는 경험은 아주 낯설고 생경했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책 날개 '타자의 눈으로 한국어를 봤다'는 작가 소개 부분이 아주 공감이 됐다.
국문학 전공자로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우리말을 사회적 상황과 연결시켜서 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아주 흥미로운 접근이다.
특히 이 책을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프롤로그 부분의 질문들 덕이다.
'왜 지역방언(사투리)은 TV나 영화에서 개그 소재나 폭력의 언어로 소비되는가?'
'지방의 여성들은 왜 남성들보다 표준어를 더 빨리 익히고 더 잘 구사하는 것일까?'
'강호동이나 김제동 같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방송 진행자들이 있는 한편,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진행자는 왜 없는가?'
평소 그냥 넘겼던 현상들에 '왜'라는 질문을 붙이니 우리의 언어가 다르게 보이고 느껴졌다.
이런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이 책을 읽는 과정이 되었다.
이 질문의 답을 이 책은 '힘'에서 찾는다.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집단 또는 개인은 힘이 센 언어의 위세를 빌려 와 자신의 약함을 벌충한다.
제주도 사람들이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제주 말을 버리고 서울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제주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힘이 약한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버릴 이유가 없다.
TV나 영화에서 '사투리를 쓰는 여성'을 생각해보자.
시골의 무지몽매한 할머니, 혹은 혀짧은 소리로 '오빠야~'하는 여성, 욕지거리를 섞어 쓰는 억센 '아줌마'가 떠오른다.
비표준형을 사용하는 여성은 통제할 수 없는 야생의 존재, 계몽되지 않은 존재로 취급당한다.
반면, 표준어를 사용하는 여성은 계몽된 존재, 정숙한 여인으로 인식될 확률이 높다. 자기 본래의 '목소리'를 낼 수 없어 표준어를 사용했는데, 그 순간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언어에 권력에 프레임을 씌우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순수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언어가 권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겠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챕터중 하나는 '다시 찬드라의 경우'이다.
30년 전 일자리를 찾아 네팔에서 온 찬드라는 길을 잃고 배가 고파 분식집에 들어가 라면을 먹었고 그 후 돈과 지갑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아마도 공장에 두고 온거 같다) 네팔어로 외국인임을 주장하지만 찬드라는 6년4개월동안 정신병원에 갖혀 손발이 묶여 강제로 정신 치료 약물을 먹는다. 찬드라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국 사회가 '낯선' 언어의 사용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사는 이주민들은 한국어를 모르거나, 영어를 모르거나 어느 정도 알려진 힘있는 나라의 언어를 못한다면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사상 초유의 팬데믹 사태에 놓인 우리나라는 긴급 재난 문자가 오직 한국어로만 제공한다.
국적, 인종, 성별, 사용 언어를 불문하고 전염병은 개인과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한국에는 현재 250만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의 5%에 달하는 수다.
이주민이 언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것을 '한국어를 모르는' 그들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폭력적인 상황이다.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에서 지원하는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