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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오설자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대 전역 후 기회가 되어 제주도에서 6개월 가량 살게 되었다. 정말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고 혼자 무언가를 할 수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났다.
제주도의 이미지는 낯설음이다. 학교 수학여행이든. 가족이든 늘 함께 온 기억만 있었는데 혼자 제주공항에 내렸을 때에는 낯선 공간 속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누군가 데려 오는 사람도 없이 혼자 6개월 머물 곳을 찾아나서야 했다. 전날 분명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고 예행연습을 했지만 모든 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항을 처음 나선 후 서쪽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고산’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6개월든 캐리어가 있어서인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옆에 탄 할머니가 제주어로 ‘뭐라뭐라’하는 말을 들었다. 한 5번 넘게 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를 못하자 보다 못한 주변 사람 중 한명이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고 할머니가 이야기한다고 전해주었다. 우리 나라 말을 하는데도 통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놀랐다.
고산에서의 삶은 더 다이나믹했다. 시골마을에 젊은 사람이 왔다고 할머니 한 분이 저녁식사를 차려주셨다. 저녁을 먹는데 마침 옆집에 살던 할머니 한분이 더 와서 같이 밥을 먹게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두 분이서 뭐라고 하면서 웃고 떠드는 사이 난 영문도 모른체 묵묵히 묵언수행을 하며 밥을 먹었다. 나중에는 나보다 먼저 제주도에 온 또래 친구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달 여가 지나자 제주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들과 재밌게 이야기도 나누고 떠드는 정도가 되자 점점 제주도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골마을에 농활 체험 온 대학생마냥 친근하게 지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주어가 등장하자 익숙한 느낌. 잊고 있던 정서가 다시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섬사람들이라 약간은 투박하고 4.3 사건과 같은 풍파를 겪으면서 어려움도 분명 존재하지만 아픔을 간직한 채 다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이 깊었다. 산소통도 없이 해녀로 물질을 하며 자녀들을 키운 해녀 할머니의 모습. 새벽부터 밭에서 농작물을 일구며 살아가는 모습. 귤 농사를 지으면서 나무의 성장과 함께 한 해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
나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제주어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언어는 그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읽은 부분 중 이 장면이 제주도 사람들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태풍은 인간들의 오만한 태도를 응징하는 신의 입김쯤으로 여겼습니다.
재해가 오면 삶을 돌아보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을 딛고 다시 삶을 이어갔습니다.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거두고, 멜라진(무너진) 담을 다시 쌓았습니다.
새봄이 돌아오면 여전히 씨를 뿌리고 태풍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p,97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순응하고 태풍이 와도 또다시 삶을 이어가는 모습 안에서 제주도 곳곳에 서 있는 우직하고 흔들림 없는 돌하르방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뱌이러스로 힘든 하루를 지내는 우리도 제주도 사람들처럼 태풍이 와도 좌절하지 않고 하루하루 또다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닮아 이겨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