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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느 늑대 이야기다 - 마을로 찾아온 야생 늑대에 관한 7년의 기록
닉 잰스 지음, 황성원 옮김 / 클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늑대하면 동화 '늑대와 빨간모자'나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에 나오는 늑대를 떠올렸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그 때 당시 너무나 재밌게 봤던 만화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의 늑대가족을, 고등학생 땐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나오는 늑대인간, 대학생 땐 애니메이션 영화 '늑대 아이'의 늑대 남매나, 영화 '늑대 소년'에서 늑대 역을 맡은 송중기가 떠오르곤 했는데...
이제는 늑대하면 '이것은 어느 늑대 이야기'의 책 주인공 로미오가 생각날 것 같다.
알래스카 주노에 살고있던 저자 닉 잰스는 우연히 자신의 집과 멀지 않은 호수 근처에서 야생 검은 늑대와 마주치게 된다.
처음 가까이서 만난 이후로 야생 검은 늑대는 닉 잰스와 그의 아내 셰리의 삶의 일부로 그들에게 스며 들었고, 셰리는 늑대에게 '로미오'라는 아주 멋진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7년동안 이웃으로, 친구로 지낸다.
로미오는 닉을 볼 때마다 꽁무니를 빼진 않았지만 인공적인 불빛이 가까워지거나 적정 선을 넘는다 싶으면 사라져 버리곤 해서 초반에 닉은 로미오의 사진을 담기위해 원거리 사진만 조심스럽게 찍었지만 나중에는 로미오가 닉 가까이서 눈을 감고 잠이 들 정도로 신뢰를 쌓는다.
닉이 로미오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건 물론 닉의 노력도 있었지만 옆에서 아낌없이 로미오의 예민함을 누그러뜨려준 고마운 녀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닉의 세마리 개(체이스, 다코타, 거스) 덕분이었다.
특히 로미오는 다코타를 아주 맘에 들어했는데 다코타가 시야에 들어오면 아무리 멀더라도 껑충껑충 뛰어와 낑낑대고, 얼쩡대고, 귀를 모으고 꼬리를 들고 끝을 부드럽게 흔들면서 바보짓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로미오는 닉이 개들과 함께 공던지기 놀이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개들이 공을 놓치면 자기가 신나게 달려가서 공을 물고 오기도 하고, 닉의 집 앞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기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를 자기의 영역으로 만들고는 규칙적으로 산책도 하곤 했다.
어느덧 로미오는 닉과 셰리 외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냈고, 몇몇에게는 규칙적으로 목격되기도 하면서 후에는 신문 1면까지 등장하게 되는데...
해가 갈수록 로미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닉은 사람들이 감행하는 노골적인 미친 행동들이 걱정스러워졌다.
아무리 사교적인 로미오라지만 늑대였고, 구경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된다면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몰랐기 때문인데 더 큰 걱정은 뭔가 잘못되었을 때 크게 비난받는 쪽은 무조건 로미오라는 게 제일 컸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순간부터 로미오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얼마 후 비글 실종 사건이 생기게 되는데.. 주노에서는 로미오의 행동을 잘 알아서 우호적이었지만 알래스카주의 다른 지역의 어업수렵부는 늑대 통제 정책을 시행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람들간에 갈등이 고조된다.
로미오를 보호하는 쪽, 로미오를 쫓아내는 쪽으로 나뉘어 사람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동안, 로미오는 항상 나타나던 장소에 출현하는 일이 차츰 줄어들더니 어느 날 사라져버린다.
이 마을의 마스코트였던,
턱에 흰 토끼를 달랑달랑 물고 호수를 총총 가르지르던 로미오, 멋진 하울링을 내뱉던 로미오, 지나가는 개들을 보면 기쁜마음에 총총 달려들던 로미오, 강 입구 근처에서 항상 모두를 주시하던 로미오, 눈 밭을 해맑게 달리던 로미오, 입가에 눈송이를 뭍힌 채 멋진 걸음으로 지나가는 귀여운 로미오, 굉장히 영리하고 한결같던 로미오...
어딘가에서 잘 지내주길 바란 로미오였지만...
못된 인간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닉과 셰리 그리고 로미오를 좋아했던 마을사람들은 마이어스와 제프를 기소하지만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벌금은 겨우 500달러였고 범법 행위는 모두 경죄에 해당됐다.
로미오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이상이 지나 마침내 판결이 났지만 법적 심판은 한심했고 죽은 로미오에게도.. 곰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정의를 안겨주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애통해하는것을 보며 나도 함께 애통했다.
뒤틀린 침입자들만 아니었다면 로미오는 여전히 마을 사람들과 함께였을테고 7년보다 더 오랜 기록을 가지고 책이 만들어졌을 것이며 마지막은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라는 말로 끝을 맺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내 셰리와 개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밤,
닉은 로미오를 생각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깨우고 싶지 않아서 소리 죽여 울려고 애썼다는 글을 보며 나도 함께 많은 눈물이 흘렀다.
로미오는 닉과, 세리와,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수천 명에게 경이를 안겨주었고, 박찬 풍경을 만들어 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시선으로 이 세상과 로미오가 속한 종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을 호수의 바위에 그려진 로미오의 추념비 사진을 보며 이미 오래 전 떠났지만 이 책으로서, 여러장의 사진으로서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 로미오에게 나도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