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
아사이 마카테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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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소싯적에 순정만화 좀 읽었다는 분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아, 그거 걸작이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공 마야와 라이벌 아유미가 연극으로 맞붙는 장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아 해당 원작인 <키 재기(키 재보기)>를 찾아본 독자 분들도 꽤 많을 듯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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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일본 근대 소설의 개척자’라는 타이틀보다 <유리가면> 속 연극의 원작자로 더 많이 알려진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는 일본 화페 5,000엔에 새겨질 만큼 유명한 인물인데 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문학에 대한 열정에 탄복한 아버지의 지원으로 이치요는 나카지마 우타코로부터 시(정확하게는 와카)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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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우타코에 대한 기록은 현재 일본의 역사책에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히구치 이치요의 스승이며 와카를 가르치는 사설학원 하기노야를 운영했다”는 정도. 이러한 기록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면밀한 조사와 상상력을 통해 메이지 시대에 활약했던 가인 나카지마 우타코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복원해 낸 작가가 아사이 마카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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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소설가가 되기 위해 잘나가던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 일을 때려 치고 마흔다섯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한 아사이 마카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대소설만을 집필하다가 마침내 《연가》로 ‘나오키 상’과 함께 ‘전국 서점 직원이 뽑은 시대소설 대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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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가》의 무대인 미토 번은 어이없는 내전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되어 지금껏 드라마나 소설에서도 다루어진 경우가 거의 없어요. 때문에 이를 소설로 쓴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마치 모래바람에 드러난 고대유적을 복원하듯 오랜 시간을 천착한 끝에 대작을 완성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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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에 나카지마 우타코에 대해 짧은 문장을 쓴 걸 계기로 미토를 방문한 이후 본격적인 집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일종의 운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연가》는 역사소설이지만 단지 사실만 적은 것이 아니라 저에게는 연애소설이면서 여자들의 재생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그녀들이 힘차게 살아감으로써 잃어버린 생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그러한 축척 덕분에 우리들도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걸 느낍니다. 여성분들이야말로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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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남자들이 벌인 소모적 내전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이 그 시대를 가슴에 품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후대에 전한 역사가 바로 《연가》인 것이죠. 아울러 작가는 마지막의 반전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준비해 두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형제자매님들의 즐거움을 위해 밝히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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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읽다가 헛갈릴 때 찾기 쉽고 원치 않을 시 접어두면 되는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를 뒤쪽 날개에 만들어 두었으니, 지금부터 책을 읽으실 분들은 꼭 써먹어 주시길. 독자 편의를 위해 만들어 두었는데 읽기를 마친 후에 발견했다는 제보가 종종 들어와서 말이죠...


마포 김 사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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