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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끝, 파랑
이폴리트 지음, 안의진 옮김 / 바람북스 / 2025년 7월
평점 :
나는 결혼 무렵부터, 그러니까 10년 전부터 꾸준히 몇몇 단체를 후원해왔다. 그 중 하나가 유엔난민기구(UNHCR)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누군가 조국을 목숨 걸고 탈출해야 한다면, 그에게는 얼마나 큰 사연이 있을까. 또 도착한 나라가 어떤 곳이냐에 따라 난민 생활은 또 다른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인생 처음으로 읽은 그래픽노블, 『지중해의 끝, 파랑』. 작가 이폴리트는 탐사 보도 기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SOS 메디테라네(SOS Méditerranée)라는 NGO의 구조선 ‘오션 바이킹호’에 직접 탑승해 난민 구조 현장을 그려냈다. UNHCR과는 별개지만, 바다에서 난민을 구조하는 이 단체의 활동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지중해는 그리스 산토리니, 이탈리아 해변, 프랑스 니스와 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이비자 같은 낭만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동시에 이 바다는 내전과 탄압을 피해 탈출한 난민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하는 난민들은 콩고, 말리, 카메룬 등지에서 리비아까지 도착한 후, 수백 명이 조악한 배에 올라 지중해를 건넌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항해는 비극으로 끝난다.
작가는 구조 활동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난민뿐 아니라 구조자들도 과로, 정치적 압력, 악천후 속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비참한 현실과 마주한 감정적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나는 이런 일을 결코 감탄만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후반부, 실제 난민선 구조 장면은 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작가가 직접 아기들을 손으로 받아내며 구조하는 장면은 읽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내 손은 아기 바구니가, 내 팔은 요람이 된다... 한 손으로 아기를 감싸안고, 다른 손으로 갓 넘어온 아기를 붙잡는다.”
이틀간 조난선 4척에서 423명을 구조한 후, 항구에 도착해 난민들이 물건처럼 분류되고 옮겨지는 장면에 대한 작가의 독백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계속 버티려면 회복력이 필요하다. 구조자들에게는 있고, 내게는 바닥난 것. 피로, 분노, 혐오. 우리가 사람들을 이렇게 맞이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지중해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고, 지금 후원하는 UNHCR을 지속해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 나아가 SOS 메디테라네에도 직접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마지막에 나오는 구조자의 한마디는 이 책의 메시지를 압축한다.
“우리 모두 만회하고 싶은 게 있어요. 구하고 싶은 것. 내 경우엔 아들인 것 같아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나는 아들에게 어떤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가? 거창한 희생이나 숭고한 직업정신은 없더라도, 적어도 이기적이고 돈만 좇는 삶은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2025년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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