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준태 지음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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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무의 말'을 듣고싶어!

여름이 시작되려 한다.

청청 초록은 날마다 눈에 띄게 푸르러져 가고 아파트 창 맞은편의 키 큰 가로수 무리는 기세가 점점 커져 어느새 네모 창은 초록으로 가득찼다. 가을 겨울 내 가지 사이사이 보이던 강변북로는 지금부터 세달쯤은 나무 뒤에 숨겨지는 때다.

우리집은 트리뷰 'ㅅ'

목공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유난히 나무에 눈이 가고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도 반가웠다.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나무의 생태 원리와 방식을 저자의 겸손하고 따뜻한 눈을 통해 풀어낸다. 생물교육학과 식물학을 공부한 저자가 오랜 시간 숲에서 관찰하고 배운 묵직한 메시지를 역사적, 문화적, 교육적, 생태적 관점의 에세이로 적어 내려갔다. 나무의 삶에서 배우는 순리가 무엇인지, 그들의 질서와 진화는 얼마나 치열하고도 정교한지, 그래서 숲길을 걷는 사람이 되어보라는 진심어린 당부까지 이 책은 좋은 '나무의 말'을 전한다.

삼월, 봄부터 시작해 계절은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며 12장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거대한 자연의 섭리가 나무의 숲꽃 속에, 열매와 뿌리에 가득하다. 생명이 격정하는 봄의 숲은 공존과 배려를 잃지 않고, 한 여름 짙어진 초록에는 부지런히 하루를 살아내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담히 준비하는 나무가 있다. 열매 맺는 풍성한 가을은 다음해를 기약하기 위한 나무의 마지막 페스티벌, 혹독한 겨울 내 미니멀리스트로 나무는 한껏 움츠려 봄을 기다린다.

자연의 그 무엇도 가벼운게 없을테지만 저자의 시선을 통해 더없이 정통하고 치열한 나무의 삶을 같이 한 사이클 흐르듯 겪고나니 창 밖 나무도 심상치 않게 보이고 나도 숲으로 걸어가 직접 그 나무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올라온다.

 

 

나무의 사계절 따라, 나도 부지런히

 

나무에게 귀 기울일 줄 모르고, 숲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를 위한 저자의 말풀이는 내 마음을 치고 때로는 위로했다. 몇몇 구절을 소개한다. 이 말을 해줄 누군가를 기다린듯, 내 마음이 반겼다 -)

"숲이 짙은 녹색으로 우거지기 전, 아직 햇빛이 숲속 깊숙이 파고들 때 친근하게 만나는 키 작은 나무들이다. 먼저 풀꽃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키 작은 나무들이, 마지막으로 키 큰 나무들이 움트는 정교한 질서가 숲에 있다. 배려와 나눔의 숲이다."

p.33 <봄>

 

숲이 깨어나고 물이 오르는 봄이 왔다. '봄을 쉽게 만난 적이 있었던가?' 봄 장을 여는 질문에 멈칫했다. 누구에게나 겨울의 시간이 있다면 또 어김없이 봄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 그래, 다독이려는 순간 내 머리를 때린다. 그토록 간절했던 봄이 와도 나무들은 배려하며 제 차례를 기다린다니. 가장 작은 나무부터, 그 다음 작은 나무, 또 그다음 작은 나무... 내 봄 기운을 재촉하며 안달하다 나만 누리면 그만이라며 황급히 욕심내는 내 이기적인 마음을 직면시키는 나무에 고개가 숙여졌다. 봄은 누구에게나 결국 온다. 그 봄을 다른 사람들과 천천히 같이 누려야겠다.


"40~50년 후에도 소나무, 전나무 같은 침엽수가 우리 숲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장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나무들이 천이의 극상을 이룰까? 바로 작고 무수한 잎을 달고 있는 부지런한 나무들이다. 졸참나무와 서어나무가 먼저 떠오른다. 숲에서 이들을 만나면 40~50년 후를 생각하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길을 물어보자.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무엇인가?"

p.94 <여름>

 

여름 장은 짙푸른 산에서 세상 모든 희열을 만난다고 한다. 너도나도 생명의 정점을 향해 몸집을 키우고 매일 스스로를 깨우는 날들이 계속된다. 생태계에서 생물상이 환경에 적응해가는 변화를 '천이'라고 부르는데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무들이 더 오랜 역사를 갖는다고 한다. 지금의 나도 더 열심을 내야하는 이유를 찾았다. 아직 배울 것이 많고 미성숙한 나는 어설프기만 하다. 부지런히 성장하자!


"1~3등급은 시켜 먹고, 4~6등급은 튀기고, 7~9등급은 배달하며 사는 나라, 치킨 코리아라는 자괴감까지 겪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이 공룡 같은 자본주의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 청산에 살어리랏다 / 머루랑 다래랑 먹고 / 청산에 살어리랏다 / 얄리 얄리 얄라성." 숲길에서 <청산별곡>을 부른다. 더 이상 비교하고 좌절하지 말자. 우리는 경쟁에서 진 것이 아니다. 나는 나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 나 자신을 발견하자. 숲길에서 이 우매한 세상을 극복할 해답을 찾는다. 숲으로 가자."
p.110 <여름>

 

"조병화의 <구월의 시>에서도 지난여름의 과욕을 지적한다. 앞뒤 바라보지 않고 챙기던 소유들이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짐이 되고 말았다. 스스로 초래한 삶의 무게이다. 그들에게 구월이 있겠는가? 그들이 살고있는 세상은 아직도 녹색으로 무성하다."

p.120 <가을>

 

전원 속 유유자적이 내 눈엔 차지 않았던 건 결국 내 것을 하나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 글에서 깨달았다. 지금도 움켜쥐고 짊어지고 그것도 안되면 끌고라도 가겠다고 낑낑댔다. 밀려나지 않으려면 이길 뿐이라며 내 앞에 무수히 많은 레이서들을 따라 헉헉대고 있었다. 이렇게 지어진 내가 아닌데, 나는 이러려고 사는게 아닌데... 나를 극복하기 위해 나무의 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무마다 굵은 원뿌리로 몸체를 굳건히 고정하고, 원뿌리에서 잔뿌리를 무수히 내어 흙을 단단히 붙잡는다. 그리고 잔뿌리에서 잔뿌리가 나오고, 그리고 또 잔뿌리…. 그렇게 흙과 접하는 표면적을 넓히며 나무마다 제 영토를 만든다. 밖으로 보이지 않기에 간과하던 세상, 바로 뿌리의 힘으로 만든 세상이 땅속에 있다."

p.176 <겨울>

 

겨울이 되면 줄기와 잎으로 가는 모든 에너지의 통로를 차단하는 '떨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뿌리로 회수해 혹독한 겨울 내내 땅 속에서 그 몸체를 지탱하고 버틴다. 나무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뿌리, 잔가지로 켜켜이 땅을 움켜쥐고 밖으로 화려했던 제 여름날을 땅 속에 간직한 채 이듬해 봄을 꿈꾸는 뿌리를 생각하니 참 근사하다.

 

 '그만둘 일 리스트'도 만들어보자. 피동적인 일상, 말초적 유흥, 사람 사이의 억지 관계 등 폐기해야 할 목록을 만들어 과감히 정리하자.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는 지혜를 숲 나무들에게서 배우지 않았는가.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지는 해를 보면서 새로운 시작을 생각한다. 미니멀하게 산뜻한 마음으로 '밝고 신선한' 새해를 맞이한다.

p.184 <겨울>

 

하고 싶은 일을 양껏 써내려간 '버킷 리스트'는 딱 내 스타일이었다. 내가 바라던 삶, 맘처럼 쉽지 않은 세상에서 이처럼 명확하고 소소한 행복을 빠르게 내 것으로 만드는 심플한 전략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겨울 나무에서 '그만둘 일 리스트'를 배웠다. 정리가 필요하구나! 때로는 떨쳐내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하나 보다.

6월이 되면 일년의 반이 지나가는듯 해 생각이 많아진다. 팽팽 돌아가는 세상의 영악함에 치일 때 이 책은 피톤치드 같은 상쾌함을 주는듯하다. 나무의 말로 마음을 회복하니 한결 여유가 생긴다. 참 좋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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