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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어 그리고 내가 사랑한 거짓말들
케이트 보울러 지음, 이지혜 옮김 / 포이에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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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보고 이 책을 가볍게 몇 장 훑어보고 떠올린 생각은 암 판정을 받은 여성 신학자가 깨닫는 삶의 원리, 죽음에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발견한 인생의 가치에 대한 에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은 거창하고 '거룩한' 이야기와는 달랐다. 힘겨운 항암 치료 과정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처절함과 절절함이 그대로 담겼고 자신을 지탱해 온 신학에 대한 시니컬한 풍자와 씁쓸함도 있었다. 진짜 위로와 공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래서 사람은 무엇으로 그 삶을 지탱해 나가는지에 대한 진실된 고백은 담담하지만 강했다. 지금 갈 길이 막막한 누구에게라도 이 책을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북미 기독교 역사를 가르친 케이트 보울러는 미국 번영 신학을 깊이 연구하고 그 종교적 배경과 문화 속에 살아온 여성 신학자다. 난임으로 어렵게 아들 잭을 낳고 얼마 안 있어 만 35세의 나이에 결장암 4기 진단을 받게 되고 이후 임상으로 치료를 이어오며 그녀가 지금까지 믿고 의지한 '축복'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신앙적 근본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암 선고에서부터 시작된 챕터는 계절을 따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항암 치료와 임상 치료 과정,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고 경험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종교적 통찰력이 부족해 '번영 신학'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이 책에 설명된 것들을 통해 어렴풋이 감을 잡아본다. 마치 하나님이 모든 인생에 예비하신 축복과 복을 왕창 준비하신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삶의 어떤 고난이 와도 더 큰 영광을 위한 일보후퇴일 뿐이라는 무한 긍정에 가까운 종교적 해석. 벌어진 일에 대해 이유를 갖다 붙이기 위해 잘못된 신앙 고백은 없었는지, 죄를 짓지는 않았는지, 신실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는지 샅샅이 조사해 연결고리를 만들고 그에 대한 죄사함을 구하는 것을 삶에 대한 해석이라고 판단 내리는 일이 부자연스럽지 않다고 여겨지는 문화가 이 책에서 풍자된 '번영 신학'의 모습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를 돕는 사람들은 무엇 혹은 누가 내게서 생명을 쥐어짜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일까? 그들은 내 삶을 샅샅이 뒤지고 중요한 사건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나의 영성 이력을 철저히 조사했다. 이 사건이었나? 하나님의 빛이 밝혀야 할 어둠이 이것이었나?

치유가 성스러운 권리인 영성 세계에서 질병은 고백하지 않은 죄의 징후이다. ... 고통당하는 신자는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p.31)

완벽히 확실한 논리 속에 흔해 빠진 잔인함이 있다. ... 이들은 어떤 때는 단서를 찾기 위해, 또 어떤 때는 정답을 찾기 위해, 그리고 언제나 평결을 내리기 위해 항상 내 삶의 값어치를 계산한다. 하지만 나는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p.145)

저자는 그녀의 삶과 연구의 목적이었던 '번영 신학'의 실체에 대해 날카롭게 풍자하고 또 때로는 좌절하며 삶의 이유를 그 곳에서 찾기 보다는 하루하루 그녀를 지탱하는 일상에서 찾기 위해 애쓴다. 죽어가는 삶과 살아있는 일상 사이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내적 갈등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그 둘 사이에 걸쳐 있는 듯한 자신의 상태에 대한 불안함과 안도감, 두려움 그 감정의 파도가 얼마나 강렬한지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똑같이 불편한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나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어.' ... 하지만 이따금 세상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은 나 하나뿐인 듯 느껴진다. (p.84)

내 머리는 닳고 닳은 두 갈래 길 사이에서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 내가 죽는다고 가정하는 일련의 계획과, 동시에 내가 살아남을 것이라 확신하는 또 다른 계획 말이다. 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다. (p.103-104)

병마의 고통과 완치라는 닿을 수 없어 보이는 결말을 매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케이트 보울러는 자신을 단단하게 세울 것들을 발견하고 고백한다. 그것이 얼마나 진심이고 그녀 삶의 진실인지 느껴져 마음이 저린 기분이 들었다. 신앙에 기대는 것도, 의술의 힘으로 치료하는 것도 아닌 그녀를 살게하는 힘은 그녀의 하루하루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노트북 앞에서 맥없이 울기보다 글을 쓰는 하루하루가 그녀를 살게 했고 남편과 아이, 가족과 친구들의 진심과 정성이 그 삶을 지탱했다.

비벌리는 종말론적 미래에 살고 있었고, 종교철학자는 과거에 살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 중간인 현재에 살고 있는 줄 알았지만, 현재에 뿌리를 내리고 단단한 땅에 두 발을 딛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 두 눈은 저 너머에 있는 것, 그다음 마감일, 그다음 장애물, 그다음 계획을 찾아 바삐 움직였다. ... 나는 교만의 죄, 삶 자체에 둔감해지는 죄를 지었다. 나는 지금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그 대신 가능성 있는 것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p.187)

사람들은 의술이 생명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저는 글쓰기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해준 사람들 덕분에 제가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p.208)

감히 병마와 싸우는 것이 어떤 삶일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케이트 보울러의 에세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의 과정과 당사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고통에 그간 내가 건넨 한없이 가볍고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를 말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누군가의 간절하고 처절한 삶에 가벼운 돌을 던져선 안되겠다는 뒤늦은 다짐과 누구라도 아픈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그 마음 속의 아픔과 고통이 공감받아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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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종례 - 맛있는 학교생활을 위한 다정한 레시피
이경준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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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3월 교실 안의 어색함과 긴장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봄부터 네 번의 지필고사와 함께 사계절이 지나며 부쩍 자라나는 아이들이 눈에 보일듯한 1년의 시간을 지나 겨울방학 마지막 종례까지_

한 주를 마치고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종례시간, 이경준 선생님은 훈계 대신 반 아이들에게 진심을 담은 쪽지를 건넨다. 사실 쪽지보다는 긴 편지에 가깝다. 선생님의 글은 학업에 지친 아이들을 향한 응원이자 한명 한명을 향한 애정이고, 때로는 흐트러진 마음과 무질서를 깨치는 따끔한 한 마디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편지를 반기는 것은 비단 짧아진 종례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따뜻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쪽지종례》는 이경준 선생님 중학교 3학년 4반, 고등학교 1학년 6반에게 전한 종례 편지를 1년간 모은 책이다. 이렇게나 멋진 진짜 '어른' 담임 선생님을 만났을 학생들이 부러워질 만큼 선생님의 글에는 깊은 위로와 진심어린 응원이 있었다. 선생님의 글은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생각'했으면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글에는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의미와 명확함이 있었다. 어른인 나도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학교 생활이 힘겨운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에게도, 일상에 치여 생각없이 하루를 보내는 어른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이 무뎌진 나를 깨웠듯, 누군가에게도 단비가 될 것 같다.

 

무엇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중고등학생 한 명에게 주변의 모든 어른들이 "공부해" 이 세 글자를 얼마나 다양한 말과 표현으로 명령하고 설득하고 회유할지 잠시 상상해 봤다. 사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그 긴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만 하는지, 공부해서 뭘 할지, 긴 학창시절을 성실히 보내고도 모르는 어른이 더 많지 않을까. 나도 한 때 열심히 했던 공부가 지금 살아가는데 어떤 밑바탕이 되었는지는 아주 막연하게만 느낄 뿐이다.

중간고사를 마친 후 결과에 속상해하는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이었다. 진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지 선생님은 아이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셨다.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도 없고, 모두가 1등이 될 수도 없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중요해. 점수와 성적에 신경 쓰는 것은 공부가 아니야. 우리 학교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정말 공부를 잘하는 걸까? 진짜 공부는 글에 담긴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고, 나름의 말로 정리할 수 있을 때 시작되는 일이야. 문제지를 풀면서 정답을 빠르게 고르는 건 '연습'에 불과해. 지금 네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풀이 연습' 시간이 아니라, 여러 학문에 흠뻑 젖어보는 경험이 됐으면 좋겠어.

p. 31

이제는 사람의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이미 단순 지식노동은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어. 아마 네가 일하게 될 가까운 미래에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공부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복잡한 생각을 정교하게 다루기 위해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해. 학교에서 익히는 지식은 생각의 도구를 다듬는 일이야.

p.34

선생님은 시험 점수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진짜 알고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는 공부를 하기 바라신다. 12년간의 교육 과정이 대부분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되어 내게 쏟아지는 정보와 글을 나름 분별하며 받아들이는 바탕은 그 때의 공부였다는 사실은 팩트다. 그 시절의 나 역시도 시험 성적 하나에 웃고 울었다. 이 이야기를 10대의 내가 들었다면 나 역시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공부의 방향을 튼튼하게 정하고 낮아진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나의 교과목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라볼 수 있는 각각의 관점이자 다른 시각일 거야. 네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귀찮거나 짜증 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세상과 대화를 제대로 나누기 위해 익히는 '다양한 소통수단'이니까.

p. 45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는 너와 나의 일상이자, 고정관념이자, 얼어붙은 마음이지 않을까? 책 대신에 다른 예술을 놓아도 모두 옳은 말이야. 음악, 그림, 조각, 영화, 연극, 뮤지컬, 발레, 사물놀이는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된단다. 지금은 부지런히 얼어붙은 고정관념을 깨야 할 시점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섬세하게 살펴보자. 어느 부위를 찍으면 쩍! 하고 갈라질까.

p.155

여전히 내가 공부하고 싶은 이유도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명확해졌다. 몇 년 친구 한 명이 전혀 다른 전공 분야인 디자인을 다시 공부하겠노라고 유학을 떠났다. 왜냐고 물었을 때, 그 친구는 세상을 디자인 관점으로 보면 얼마나 멋지고 다를까 기대된다는 말을 했었다. 그 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학문 분야일 수 있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었다. 그 말이 얼마나 공부의 본질에 가까운 이야기인지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었다. 다양한 프레임, 소통의 수단을 알고 배워 나가는 과정이 공부 그 자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생각하고 공감하는 힘을 기르자!                

            

나는 네가 시험공부를 할 때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외우는 때가 있는 것 같아서 겁이 나더라.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언제, 어떤 환경에서 등장하게 된 것인지, 어떻게 적용해서 옳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하며 이해하기를 바라. 세상이 나쁜 일을 교묘하게 권할 때,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

에서 나오거든.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파악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힘이 필요해.

p.54

얼마 전 참여했던 독서 모임에서도 인용됐던 아돌프 아이히만, 무사유의 죄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도 반 아이들에게 세상을 분별해내는 힘을 기를 것을 당부하신다. 시대와 맥락, 위치와 힘을 이해해야 판단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나 역시도 먹고 산다는 핑계로 내 일과 가정, 관계 모두에서 생각하기를 멈추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무사유의 죄에 빠지지 말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함께 흔들리며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어른이다.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른이다.

p.65

방황하는 학생을 향한 걱정과 힘든 일을 겪은 학생을 향한 뜨거운 위로는 선생님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 반증하고 있었다. 여러 번 감탄했지만 정말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아이들 곁에 계시는게 참 다행이고 아이들이 얼마나 건강한 마음을 지니고 자라날까 하는 마음에 괜히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나도 흔들리는 누군가 옆에 같이 흔들리며 공감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는 든든한 어른일까. 자문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어른다운 어른. 이미 그런 어른이신 이경준 선생님을 뵌 적은 없지만 존경한다.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미성숙한 나 자신도 더 크기를 간절히 바라며, 선생님의 말씀처럼 공부하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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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 까미노 - 스물아홉, 인생의 느낌표를 찾아 떠난 산티아고순례길
김강은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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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리운 이름, 산티아고순례길_

나도 10년 전에 걸었기 때문에 애정이 크다. 그래서 산티아고순례길에 대한 에세이는 꽤나 읽은 편이다. 내가 경험했었기에 더 공감할 수 있고 동시에 미처 다 걸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길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아홉수, 까미노》는 산티아고순례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한 이야기, 그리고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 생각을 솔직하게 담았다. 아주 대단한 깨달음을 아니지만, 걷는 그 길 위에서 보고 느끼게 되는 것들을 따라 가다보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 사무국'에 따르면 작년 3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길을 찾았고 그 중 한국 사람은 1.7%(5665명)이었다고 한다. 여행 프로그램과 예능에서 소개되면서 우리들에게 더욱 익숙해진 곳이라 이 곳은 아주 신비롭기 보다는 누구나 한번쯤 걷기를 소망하는 길이 된 듯하다. (*출처: 국민일보 19.4.27일자 '순례길 걷는 그리스도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_

Camino는 길, Santiago는 그 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를 의미한다. 9세기 초 스페인 콤포스텔라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의 유해가 있음이 알려지고 산티아고 성당까지 많은 그리스도인의 순례가 시작됐다. 이 길을 종교적 순례로 걷는 사람이 절반 정도는 되지만 트래킹을 위해서, 그저 걷고 싶어서 등 종교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순례도 제법 많다.

저자는 2년 전 애인과 함께 순례길 중 '북쪽길'을 걸었다. 예상치 못한 갈등으로 연인에게는 작별을 고했고 어느덧 서른이 되려는 스물아홉 살, 그녀는 17년 지기 친구와 다시 한번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한다. 늘 확신이 없는 삶, 나답지 않은 않은 부자연스러운 일상에 느낌표를 찾아나선 길. 이 책은 30일간 '프랑스길'을 걸으며 남긴 기록과 사진, 그리고 그녀가 직접 그린 그림과 툰을 모은 여행 에세이다.

        

그림을 그리는 저자는 까미노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드로잉북과 빠레트를 챙겨 걷는다. 길 위의 풍경, 함께하는 사람들 그 모든 순간 순간을 남기고 싶을 때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이 책 곳곳에는 그림들과 그림 그리는 그녀의 모습이 담겨있다. 각자가 순례길을 추억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이 방식은 참 멋지고 근사하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작업을 마치려면 오래도록 바라봐야 해서 더 선명한 어떤 순간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그림을 보고있자니 까미노를 애정하는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산티아고라는 한 지점을 향하는 까미노는 보통의 여행이랑 다르다. 많은 것들이 다르겠지만, 그 중 가장 매력적인 차별점은 여행이라는 카테고리보다는 더 협소해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특수한 유대감을 주지만, 군대나 동아리 같은 집단보다는 개별적인 목적과 경험을 갖는다는 것이다. 똑같은 길을 걷기에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개개인의 경험이나 느낌이 조금씩 달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참 좋다.

p.53-54, 7.7(Day4)

이 책에는 까미노에서의 독특한 문화가 잘 나와있다. 내가 그 길을 걸었을 때도 혼자였지만 콤포스텔라까지 갈 수 있었던 건 모두 함께 걸어준 순례자들 덕분이었다.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 사이의 함께하는 동지애, 그리고 유대감은 처음 본 국적도 나이도 다른 사람들을 끈끈하게 묶어준다. 저자는 때로는 혼자 걸으며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함께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목적을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닌, 그 길의 과정을 충실히 즐기기 위한 선택이었고 그건 좋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지만, 까미노는 국토대장정을 하듯 이 악물고 앞사람을 쫓아가야 하는 길이 아니기에.

꼭 힘들게 순례길을 걸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여행의 방법에 옳고 그룸도 없다. 하지만 이 길을 오른 이유가 단순히 관광이나 버킷리스트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무게를 가늠해보기 위해 쉽지 않은 결정으로 오른 길이라면 내가 짊어진 배낭의 무게를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두 발로 걸으며 내 짐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껴보려 해야 하지 않을까.

p.137 7.17(Day 14)

까미노가 단순히 버킷리스트에 밑줄 긋기 위한 게 아니라면 짐의 무게를 느끼며 오롯이 감당하며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메시지가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까미노는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10kg이 넘는 묵직한 배낭이 어깨와 허리를 내리누르는 상태로 반나절을 오롯이 걸어야 하니 보통 체력과 준비로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길을 걷는 가치는 그 고생을 뛰어넘는다고 믿는다. 이 책 곳곳에 왜 걸어야 하는지 이유가 충분히 나와있으니, 까미노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젊음은 상대적인 것이다. 매일 같이 일어나 어둠 속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걷는 시간도, 어둠 속에 이정표를 잃고 해매며 쩔쩔매는 시간도, 다리는 뻐근하고, 배는 고파서 투덜거리는 시간까지도, 언젠가는 이 순간들을 가장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라 기억하는 날이 올 것이다. 너무 평범한 지금도, 못마땅한 순간들동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의 과거가 될 거라고, 노랫말이 속삭인다

p.72 7.10(Day 7)

 

 

까미노를 기억하면 나도 꼭 이런 기분이 든다. 그 때는 물집으로 실을 꿰맨 발가락, 삐걱이던 무릎이 너무 아파서 더 많이 보고 누리지 못했다. 한국에서 잘 준비해온 한국인 순례자들에 비해 운동화도, 우비도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이 책가방으로 쓰던 가방에 꾸깃꾸깃 짐을 싸고 제대로 된 한끼를 먹을 돈도 없어 마른 바게트빵에 초리소가 내 아침이자 점심이었다. 바르는 꿈도 꿔보지 못했고 어쩌다 쉬면 아픈게 다시 올라올까 무서워서 그냥 걸었다. 생각해보면 참 무식하고 왜 쓸데없이 고행을 했나 싶은데, 그런데도 문득문득 그립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다. 어느 정도는 미화되는 기억 때문이겠지만 그리움이 크다. 스페인을 사랑하는 만큼 까미노를 사랑한다.

여러 언덕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양한 풍경을 품고 이쓴 까미노처럼, 인생이란 것도 하나의 큰 산이라서 정상이라는 꼭짓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작고 큰 언덕의 연속이라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새로운 국면인 펼쳐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 너머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눈 앞의 풍경에 쉽게 ?아해서도 안 된다. 언덕을 넘극 과정도, 내려오는 과정도 그저 지나쳐 보내야 하는 과정들이 아니라, 인생을 이루는 중요한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p.133 7.17(Day 14)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하면서 완주에 목표를 두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최종 목적은 완주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까미노 완주장'이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치는 과정, 즉 예상치 못한 위기와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 최선을 위한 고민, 이별과 아픔, 작은 깨달음과 행복에 이르는 길...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인 것이다.

p.142 7.18 (Day15)

 

메세나 평원을 지나며 저자의 기록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즐기지 못했던 과정이어서인지 더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그 때는 그저 끝까지 가는데에만 안간힘을 쏟았다. 아파도 요령피우지 않고 내 배낭은 내가 메고 두 발로 걷는게 정석이니 그걸 해내야만 내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얼마나 어린 마음이었는지, 까미노는 그렇게 걷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느끼고 배웠다. 그 순간을 더 누렸어야 했다. 그래서 나도 두번째 까미노를 꿈꾸게 된다. 까미노 전체가 과정인 그 길을 다시 천천히 누리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언덕과 광활한 자연을 빠짐없이 내 안에 저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가 담아낸 풍경과 직접 그려낸 그림 속에 그 길을 걸어야만 하는 이유가 가득했다.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이 안되는 풍경도, 그 길의 소소한 일상도 그 어떤 30일 여행코스도 주지 못할 것들이 까미노에는 가득했다.

푸짐한 순레자 메뉴도, 디저트로 먹는 1유로짜리 아이스크림도, 길가의 바르도, 친구들과 매일같이 먹는 푸근한 저녁식사도, 국적도 나이도 다른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도.. 이 당연한 듯한 일상들이 곧 끝나는구나. 우리게게 가장 그리울 순간은 거창한 풍경이나 커다란 추억이 아니라, 작고 소중한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함께 공유한 친구들이다.

p.2285 7.30(Day 27)

 

 

함께 걷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 나도 함께 걸어주신 한국인 아저씨를 앙헬(천사)라고 생각했다. 아파서 느린 나를 혼자 두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하고 뜨끈한 국물 먹고 힘내라고 사주신 뿔뽀도 잊지 못한다. 난 콜라 한잔 밖에 사드리지 못했지만 아낌없이 다 주시고는 홀연히 가셔서 제대로 인사도 못드린 것 같아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꼭 그 길 위가 아니더라도 나의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 친구, 나의 지인들에게 내 삶을 함께 해줌에 감사해야겠다.

이 여정이 끝이 났는데, 나는 내가 원했던 느낌표를 만들었을까. 잘 모르겠다. 인생을 뒤집는 대단한 깨달음 같은 것동 없는 것 같다. 하짐나 이 짧니만 긴 여정을 걸으며 순간순간 작은 깨달음들을 얻었다. 천ㅊ너히 걸어도 빨리 걸어도 포기하징 않으면 결국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건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외롭게 싸우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훨씬 강하다는 것. 잘못된 선택이나 잘한 선택이란 건 없다는 진리. 오로지 그 선택을 믿고 받아들이고 만들어가는 내가 있을 뿐이라는 깨달음들...

P.249 8.2(Day 30)

오롯이 두 발로 걸어 도착한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의 희열! 그 여정을 책 첫페이지에서부터 함께 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또 나 역시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삶이 흔들린다고 생각될 때,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의 까미노를 들추듯, 이 책을 다시 꺼내야겠다. 그리고 나의 두번째 까미노를 준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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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준태 지음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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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을 듣고싶어!

여름이 시작되려 한다.

청청 초록은 날마다 눈에 띄게 푸르러져 가고 아파트 창 맞은편의 키 큰 가로수 무리는 기세가 점점 커져 어느새 네모 창은 초록으로 가득찼다. 가을 겨울 내 가지 사이사이 보이던 강변북로는 지금부터 세달쯤은 나무 뒤에 숨겨지는 때다.

우리집은 트리뷰 'ㅅ'

목공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유난히 나무에 눈이 가고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도 반가웠다.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나무의 생태 원리와 방식을 저자의 겸손하고 따뜻한 눈을 통해 풀어낸다. 생물교육학과 식물학을 공부한 저자가 오랜 시간 숲에서 관찰하고 배운 묵직한 메시지를 역사적, 문화적, 교육적, 생태적 관점의 에세이로 적어 내려갔다. 나무의 삶에서 배우는 순리가 무엇인지, 그들의 질서와 진화는 얼마나 치열하고도 정교한지, 그래서 숲길을 걷는 사람이 되어보라는 진심어린 당부까지 이 책은 좋은 '나무의 말'을 전한다.

삼월, 봄부터 시작해 계절은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며 12장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거대한 자연의 섭리가 나무의 숲꽃 속에, 열매와 뿌리에 가득하다. 생명이 격정하는 봄의 숲은 공존과 배려를 잃지 않고, 한 여름 짙어진 초록에는 부지런히 하루를 살아내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담히 준비하는 나무가 있다. 열매 맺는 풍성한 가을은 다음해를 기약하기 위한 나무의 마지막 페스티벌, 혹독한 겨울 내 미니멀리스트로 나무는 한껏 움츠려 봄을 기다린다.

자연의 그 무엇도 가벼운게 없을테지만 저자의 시선을 통해 더없이 정통하고 치열한 나무의 삶을 같이 한 사이클 흐르듯 겪고나니 창 밖 나무도 심상치 않게 보이고 나도 숲으로 걸어가 직접 그 나무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올라온다.

 

 

나무의 사계절 따라, 나도 부지런히

 

나무에게 귀 기울일 줄 모르고, 숲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를 위한 저자의 말풀이는 내 마음을 치고 때로는 위로했다. 몇몇 구절을 소개한다. 이 말을 해줄 누군가를 기다린듯, 내 마음이 반겼다 -)

"숲이 짙은 녹색으로 우거지기 전, 아직 햇빛이 숲속 깊숙이 파고들 때 친근하게 만나는 키 작은 나무들이다. 먼저 풀꽃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키 작은 나무들이, 마지막으로 키 큰 나무들이 움트는 정교한 질서가 숲에 있다. 배려와 나눔의 숲이다."

p.33 <봄>

 

숲이 깨어나고 물이 오르는 봄이 왔다. '봄을 쉽게 만난 적이 있었던가?' 봄 장을 여는 질문에 멈칫했다. 누구에게나 겨울의 시간이 있다면 또 어김없이 봄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 그래, 다독이려는 순간 내 머리를 때린다. 그토록 간절했던 봄이 와도 나무들은 배려하며 제 차례를 기다린다니. 가장 작은 나무부터, 그 다음 작은 나무, 또 그다음 작은 나무... 내 봄 기운을 재촉하며 안달하다 나만 누리면 그만이라며 황급히 욕심내는 내 이기적인 마음을 직면시키는 나무에 고개가 숙여졌다. 봄은 누구에게나 결국 온다. 그 봄을 다른 사람들과 천천히 같이 누려야겠다.


"40~50년 후에도 소나무, 전나무 같은 침엽수가 우리 숲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장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나무들이 천이의 극상을 이룰까? 바로 작고 무수한 잎을 달고 있는 부지런한 나무들이다. 졸참나무와 서어나무가 먼저 떠오른다. 숲에서 이들을 만나면 40~50년 후를 생각하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길을 물어보자.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무엇인가?"

p.94 <여름>

 

여름 장은 짙푸른 산에서 세상 모든 희열을 만난다고 한다. 너도나도 생명의 정점을 향해 몸집을 키우고 매일 스스로를 깨우는 날들이 계속된다. 생태계에서 생물상이 환경에 적응해가는 변화를 '천이'라고 부르는데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무들이 더 오랜 역사를 갖는다고 한다. 지금의 나도 더 열심을 내야하는 이유를 찾았다. 아직 배울 것이 많고 미성숙한 나는 어설프기만 하다. 부지런히 성장하자!


"1~3등급은 시켜 먹고, 4~6등급은 튀기고, 7~9등급은 배달하며 사는 나라, 치킨 코리아라는 자괴감까지 겪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이 공룡 같은 자본주의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 청산에 살어리랏다 / 머루랑 다래랑 먹고 / 청산에 살어리랏다 / 얄리 얄리 얄라성." 숲길에서 <청산별곡>을 부른다. 더 이상 비교하고 좌절하지 말자. 우리는 경쟁에서 진 것이 아니다. 나는 나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 나 자신을 발견하자. 숲길에서 이 우매한 세상을 극복할 해답을 찾는다. 숲으로 가자."
p.110 <여름>

 

"조병화의 <구월의 시>에서도 지난여름의 과욕을 지적한다. 앞뒤 바라보지 않고 챙기던 소유들이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짐이 되고 말았다. 스스로 초래한 삶의 무게이다. 그들에게 구월이 있겠는가? 그들이 살고있는 세상은 아직도 녹색으로 무성하다."

p.120 <가을>

 

전원 속 유유자적이 내 눈엔 차지 않았던 건 결국 내 것을 하나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 글에서 깨달았다. 지금도 움켜쥐고 짊어지고 그것도 안되면 끌고라도 가겠다고 낑낑댔다. 밀려나지 않으려면 이길 뿐이라며 내 앞에 무수히 많은 레이서들을 따라 헉헉대고 있었다. 이렇게 지어진 내가 아닌데, 나는 이러려고 사는게 아닌데... 나를 극복하기 위해 나무의 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무마다 굵은 원뿌리로 몸체를 굳건히 고정하고, 원뿌리에서 잔뿌리를 무수히 내어 흙을 단단히 붙잡는다. 그리고 잔뿌리에서 잔뿌리가 나오고, 그리고 또 잔뿌리…. 그렇게 흙과 접하는 표면적을 넓히며 나무마다 제 영토를 만든다. 밖으로 보이지 않기에 간과하던 세상, 바로 뿌리의 힘으로 만든 세상이 땅속에 있다."

p.176 <겨울>

 

겨울이 되면 줄기와 잎으로 가는 모든 에너지의 통로를 차단하는 '떨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뿌리로 회수해 혹독한 겨울 내내 땅 속에서 그 몸체를 지탱하고 버틴다. 나무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뿌리, 잔가지로 켜켜이 땅을 움켜쥐고 밖으로 화려했던 제 여름날을 땅 속에 간직한 채 이듬해 봄을 꿈꾸는 뿌리를 생각하니 참 근사하다.

 

 '그만둘 일 리스트'도 만들어보자. 피동적인 일상, 말초적 유흥, 사람 사이의 억지 관계 등 폐기해야 할 목록을 만들어 과감히 정리하자.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는 지혜를 숲 나무들에게서 배우지 않았는가.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지는 해를 보면서 새로운 시작을 생각한다. 미니멀하게 산뜻한 마음으로 '밝고 신선한' 새해를 맞이한다.

p.184 <겨울>

 

하고 싶은 일을 양껏 써내려간 '버킷 리스트'는 딱 내 스타일이었다. 내가 바라던 삶, 맘처럼 쉽지 않은 세상에서 이처럼 명확하고 소소한 행복을 빠르게 내 것으로 만드는 심플한 전략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겨울 나무에서 '그만둘 일 리스트'를 배웠다. 정리가 필요하구나! 때로는 떨쳐내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하나 보다.

6월이 되면 일년의 반이 지나가는듯 해 생각이 많아진다. 팽팽 돌아가는 세상의 영악함에 치일 때 이 책은 피톤치드 같은 상쾌함을 주는듯하다. 나무의 말로 마음을 회복하니 한결 여유가 생긴다. 참 좋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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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아이가 산다 - 5년차 부부의 난임 극복툰
우야지 지음 / 랄라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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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차 부부의 난임 극복론_

이 제목이 지금 나에게는 여러 의미로 다가왔다. 우리 역시 5년 차 부부, 우리는 2차 난임?

첫째가 태어나고 2년이 지났고 내가 그토록 꿈꾸던 2년 터울 둘째는 3월을 끝으로 물 건너갔다. '난임'이라는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배테기는 물론 올해 초부터는 산부인과도 매주 한 번 이상 다니고 있고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한약도 두 달째 꾸준히 먹고 배란유도 약도 처방받아서 먹기도 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과하지 않고 몸에도 무리가 안 가는' 자연 임신 노력은 여기까지다. 여전히 임신은 안 되고 있고 복직은 세 달도 채 남지 않은 요즘. 그래서 이 책은 남 일 같지 않았다. 아이가 있으니 난임부부에겐 세상 태평한 소리겠지만, 둘째를 기다리는 마음이 커지는 만큼 조급함도 커지는 건 사실이다.

 

분명 귀여운 툰인데 그 내용은 가볍지 않은 '난임 극복툰'이다. 꿋꿋하지만 짠한 저자 우야지와 남편의 소소한 대화에도 아이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각 장에 붙은 소제목에는 요즘 내가 달고 사는 말들이 그대로 있어 어찌나 공감했는지 모른다.

 

우야지님 부부는 두 번의 자연임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후 두 번의 인공수정. 이 역시 실패하고 시험관 수술 세 번째에 극적으로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을 위한 긴긴 시간과 험난한 과정을 따라 읽으며 임신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또 생명이 찾아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 엄마지만 새삼 느꼈다. 둘째가 생기지 않는 답답함이 여전하지만 그간의 조급함도 잠시 잊고 이렇게 쉽지 않은 축복을 우리 부부가 이미 받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답답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기도 했다.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면, 맘처럼 잘되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ㅅ'

 

아이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1부에는 가득하다. 누구에게는 참 쉬운 일이 왜 그리 어렵기만 한지. 이렇게 하면 생긴다더라, 이런 설이 있다더라. 나도 들어본 이야기들도 잔뜩 나온다. 웃프지만 지나가는 소리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 그때의 간절함에 공감이 된다.

그렇게 저출산이라는데,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나가보면 놀이터엔 온통 아이들 천지다. 그리고 내 눈엔 유난히 형제, 자매, 남매인 아이들이 어찌나 많이 보이는지. 아이를 갖기 원하는 부부라면 지나가는 아이들에게도 눈길이 가는 그 마음이 당연히 이해된다. 난 나란히 걸어가는 두 아이를 보면서 그 마음이 되니까. 첫째 낳고는 나도 둘째는 못 낳겠다 싶었다. 아이가 조금 자라고 나니 형제가 있으면 같이 뛰어놀겠구나, 여동생이 있으면 예뻐해 주려나,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한 명만 낳겠다던 친구들도 하나둘 둘째를 갖고 둘 아이 엄마가 되었다. 휴.. 역시 내 맘대로 안되는 게 인생!

 

임신이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보통은 여자에게 더 많은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나가는 말로 몸이 차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조급해서... 검사를 해보면 알 수 있는 문제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경우 여자들 스스로도 '내 탓'인것만 같은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모든 의학적 노력은 내가 먼저 시작했고 스스로를 탓했던 것 같다. 임신 자체가 아주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서야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숙제를 못한 것 같은 찜찜함이 있다.

배란기가 지나가고 2주는 내게 길고 긴 시간이다. 이번에는 성공일까? 배가 콕콕 쑤시거나 찌릿한 느낌만 들어도 기대하는 마음과 설레발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어찌나 싸워대는지, 하루하루가 길고 더디게 간다. 무한공감/ㅅ/

 

마지막 3화는 드디어 찾아온 소망이의 육아 이야기다. 그렇게 기다린 아이이지만 그렇다고 육아가 늘 감사함과 기쁨이 넘치는 건 아니다. 어느 집 육아라고 하하 호호만 가득할까. 엄마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아이, 귓전에서 하루 종일 울리는 엄마 소리, 잠 좀 자라~ 간절히 빌게 되는 순간들. 그리고 문득 잠든 아이의 등허리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책임감의 무게 그리고 내 허리를 휘게 하는 아이의 무게_진심 너무 무겁단 말이다.

 

이 책은 난임부부들을 위한 임신을 위한 다양한 방법과 팁을 자세히 보여준다. 책 뒤쪽에는 난임검사, 시술 방법 등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팁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난임'이 무거운 주제이다 보니 난임 관련한 책이나 글들은 보통 리얼하지만 슬프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한다. 웃픈 툰을 읽다 보면 그래도 웃을 수 있고 어느 순간 위로받았음을 느낀다. 엄마가 되는 것도, 엄마로 자라나는 것도 누군가의 툰으로 이렇게 다시 보니 새삼 감사하다. 긴 시간을 견뎌 세 식구가 된 가족을 보면서 다시 나도 힘을 내본다. 때가 되면 주시겠지'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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