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은 처음이라
슬구(신슬기) 지음 / 푸른향기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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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슬기 작가가 슬구라는 필명으로 낸 두번째 책_《스무살은 처음이라》

특유의 빵 터진 표정도 그대로고 쪼그리고 앉아 힐끗 카메라를 쳐다보는 듯한 사진도 그대로다. 첫 책이 싱그러움과 풋풋함 그 자체였다면 이번 책은 여전한 앳티와 순간순간 부쩍 어른스러움이 함께 전해온다.

성년의 날 즈음이기도 해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열여덟 고등학생의 여행기로 화제가 되었던 《우물밖 여고생》은 갓 스무살 청년이 되어 다시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누구나 한번은 지나가는 스무살. 학교와 청소년이라는 프레임을 막 벗어나 자유롭게 세상에 첫 발을 디딘 모든 청춘이 통과하는 첫 페이지이기에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패기와 낭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득하지 않을까. 그래서 기대가 됐다. 슬구라면, 그녀라면!

'슬구'라는 필명이 주는 친근감 때문인지, 꼭 여동생같은 느낌 때문인지 자꾸 '슬구'라고 부르게 된다. 띠동갑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언니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 책 속 슬구의 모습이 낯설지 않고 정이 간다. 한없이 귀여웠던 소녀는 '무소속'이 된 스무살 어느 날 홀연히 동남아 여행을 결심한다. 행선지만 정한채로 편도 비행기표를 끊고 무섭지만 짐짓 스스로를 달래며 여행을 시작. 여행의 목적이자 인생의 목표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낭만있는 삶을 사는 것'

 

스무살인 누군가에게 이 책을 한번쯤 권하고 싶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지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야 하는 청춘이라면, 그리고 스무살이 넘어 사춘기가 뒤늦게 온 어른이라면_

나의 케이스가 딱 그랬다. 누가봐도 튀지않는 모범생 스타일에 가까웠고 나 스스로도 사춘기를 정말 무난하게 보냈다 싶을 정도로 감정의 동요도, 반항적 기질도,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했던 노력도 없이 스무살 대학생이 되었다. 기대했던 캠퍼스 생활, 전공수업과 알바, 학회 활동 동아리 .. 정신없이 하루하루 처음으로 제대로 놀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밤새워 놀고 자유를 만끽하고, 그러다 스무살 여름이 꺾이던 어느 날엔가 문득 공허해졌다. 이게 다였나, 나는 무엇을 향해 가고있나, 내 꿈이 뭐였더라... 아무것도 모르겠다. 남들은 도대체 그 고민들을 다 언제했던 거지? 혼란스럽긴 했는데 딱히 뭘 해야할지 그조차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그 시간을 어영부영 가벼운 술자리로 보내버렸다. 일상을 벗어난 이국적인 장소가 주는 각성 때문일까, 나 역시도 다시 진지하게 내 삶에 물음표를 던진 건 스물셋, 교환학생으로 갔던 스페인에서였다.

9개월 동안 스페인 소도시에서 살며 단조로운 일상을 살았다. 늘 바쁘게 살았는데 너무 조용하고 시간이 느리게 가니 스스로에게 여유가 생겼다. 매일이 편안했다. 거추장스럽고 꾸며야하는 모든게 그땐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서야 다시 내 삶을 생각했다. 지금 행복해! 딱 지금처럼 살면 좋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뭘 하고 먹고살면 좋을까? ... 그 시간 동안 천천히 답을 찾았던 것 같다. 모든 결론을 내고 한국에 돌아온 건 아니지만, 그때까지의 선택을 정리하고 나니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은 있었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해 조금은 선명해진 가이드라인이 생긴듯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하고 친해졌다. 나도 모르겠는 나의 캐릭터가 그 때 처음으로 인식됐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늘 불안하게 살았을 거다. 떠밀려 사는건지 내가 좋아서 하는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세상에 휩쓸려도 그게 바람인지 내 마음인지도 모르고. 남들의 속도와 그럴듯한 모습에 안달내고 조바심내며 아둥바둥.

 

"여행을 좋아하지만, 실은 여행할 때의 제 모습을 더 좋아해요. 뭐랄까, 숨통이 좀 트인 달까요. 저를 작아지게 만든느 것들에서 벗어나 온전한 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껴요.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그곳, 타지에서요. 이 공간에서 '나'는 그냥 '나'일 수 있어요. 경쟁하고 비교당할 타인은 어디에도 없지요. 그렇게 오로지 '나'라는 사람으로 오랜 시간 떠돌다보니 깨닫게 되더라구요. '나, 꽤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p.70

 
 

작가 슬구도 여행지에서 그와 비슷한 어느 때를 보내고 있는듯했다.

 

 

"나,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기에 이렇게 행복한 거 아닐까 싶더라구. 내가 계속해서 '난생처음'을 경험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 그곳을 배워갈 수 있었던 건 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개구리여서가 아니었을까? 매일 봤던 풍경, 매일 만났던 사람들, 그래서 모든 게 예상 가능한 게 여행이었다면 난 이만큼까지 여행을 사랑하지는 못했을 거 같아." 모든 여행지는 낯설고 처음이다. 두 번 세 번 다녀온 곳이라 해도 일상이 아닌 이상 새롭다. 그래서 예상밖의 일들이 일어나고 깨지고 배우게 된단다. 슬구 작가가 여행을 이만~큼까지 사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이 책 제일 앞에 적어둔 '이 세상 모든 스물에게, 다가올 스물을 상상하고 있을 너에게, 여전히 스무살처럼 살고 싶은 당신에게' 그래서 나는 이 책과 여행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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