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어나서 여행을 다녀본 경험을 떠올리면 30여년의 삶을 살았지만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여행을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새로운 곳에 방문하고, 신문물을 접하는 것에 상당히 열려있는 편이다. ‘그러면 왜 여행을 안갔나요?’라고 묻는다면, 두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다.

먼저는 돈이 없었다. 여행은 돈이 많이 필요하다. 왕복 이동을 하면서 길에 돈을 뿌린다. 그리고 여행지에 가면 맛있는 것을 먹으며 몸에 돈을 뿌린다. 그리고 숙소에서 잠을 자야하기에 깨어있는 순간부터 자는 순간까지 돈이 필요한 것이 여행이다. 그런데,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돈이 있어도 손이 떨려서 못 썼다.

두 번째 이유는 시간이 없었다. 돈이 생기게 되니 시간이 없다.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다음 일들이 밀려온다. 처리해야 할 일들, 갑자기 끼어든 일들, 일을 하면서 꼬리물듯 딸려오는 여러 일들을 처리하다보면, 하루, 한 달, 일년이 금방 지나간다. 몰려오는 일들을 피해서 콧바람을 쐬는 것도 손이 떨려서 못했다.

그래서 많은 베스트셀러 책 중에 이 책을 골라서 사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이 정의하는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가 궁금했다. 여행은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책을 보면서 가장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내 인생과 나의 삶을 돌아보면, 안전하다고 느끼는 내 집, 내 공간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가장 편한 곳이지만, 가장 불편하고 숨이 막힌다. 그곳에 있으면 내가 받았던 고통들이 떠오른다. 그 사각형 공간 안에서 구석에 쭈그려서 울던 기억들. 벽에 파인 홈들. 나의 수치심이 떠오르는 공간. 그 공간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넌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냥 이렇게 살아. 그게 너야.”

그 공간으로부터의 도피, 탈출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곳에서 다른 이로 살아갈 수 있다. 근래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집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살았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 가장 오랫동안 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 6년째 이곳에서 지내면서 이곳에서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공간에도, 나에게도 새로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공간의 분리가 필요하다.

책을 보며 느낀 한 부분에 대한 딥한 생각을 나눈 것이다. 나의 현재의 상황을 책을 보면서 깨닫는다. 여행을 가야겠다. 어딘가로 말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잠시 분리되는 시간을 갖기로 다짐하게 된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의미로부터의 벗어나서, 이 의미들이 무엇인지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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