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대에 부딪힐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도덕적·정신적 확신을 공공의 장에 내보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맞서지 않고 뒷걸음질 친다고 해서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 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 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재화의 의미에 관해 논쟁하는 것을 넘어, 좀 더 큰 의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명명권과 시정 마케팅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점유하면서 공적 성격을 약화시킨다. 상업화는 특정 재화를 훼손할 뿐 아니라 공통성을 잠식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각계각층 사람들이 서로 마주칠 기회는 줄어든다. 야구경기장에서 스카이박스를 올려다보면서, 혹은 스카이박스 안에서 내려다보면서 이러한 현상을 목격한다. 과거에 야구경기장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과거에 야구경기장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섞여 응원했던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스카이박스를 올려다보는 사람뿐 아니라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에게도 상실(喪失)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불평등이 점차 심화하면서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는 현상은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점차 분리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고 일하고 쇼핑하며 논다. 우리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닌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스카이박스화(skyboxification)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민주주의에 좋지 않으며 만족스러운 생활방식도 아니다.
-알라딘 eBook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