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버드에서도 책을 읽습니다 - 독서 인생 12년차 윤 지의 공부, 법, 세상 이야기
윤지 지음 / 나무의철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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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본문 내용

많은 사람들이 작년에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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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부모님 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들의 젊고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신 건지 모르겠다

나는 영화 자체보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에 관심이 더 많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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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간 시기를 떠올릴 때 애틋함을 느끼는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운 순간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과거의 찬란했던 자신을 잊지 못해 지금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빈도도 잦아진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어린 시절, 다시 볼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나를 추억하노라면 발전은커녕 자꾸 퇴보하는 것 같은 막막막함도 커져간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생이란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올라가서 정상에 다다르면 그간의 노력을 치하하고 주변으로부터 쏟아지는 부러움과 존경을 만끽한 다음, 
다시 천천히 내려가는 게 인생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꾸준히 계단을 올라갔다
.
'하버드까지 왔으니 이제는 아무도 나에게 더 높이 올라가라고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제 좀 쉬면서 쉬엄쉬엄 해도 되겠지?'
하지만 이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늘 내가 더 높이 올라가길 기대했다
한 계단만 더 오르면 되겠지, 이 정도면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나에게 만족하겠지 했던 기대는 참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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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고 
다른 사람의 욕망이 투영된 꿈은 잔인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살지 못한 삶을 다른 사람이 대신 실현해주길 바라는 걸까?
정작 당사자는 그 꿈에 갇혀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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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생을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 자체나를 옥죄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생에 정점이란 게 있고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 뒤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주어야 한다면,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덧없을까?



더 이상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도,
내가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내가 민사고 출신에 듀크대를 1년 조기 졸업하고 
지금은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라고 밝히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끼곤 한다

결코 왕관을 쓰기 위해 소위 말하는 명문 학교로 진학한 것이 아닌데, 
어느 순간 나는 세상이 왕관을 썼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원래 머리가 좋았냐, 
보나마나 금수저겠지, 
카이 캐슬 현실판이네, 
저런 집안에서 태어나면 누구나 명문대 간다 등등.

나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력만 보고 함부로 내뱉는 온갖 화살과 돌멩이를 나는 참 오랫동안 온몸으로 맞았다
많은 의심과 오해와 편견견이이 담긴 시선 앞에서 
괜찮은 척하기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생각에서인지 노트북을 열었다
...
주목받고 싶어서 쓴 글은 아니었지만, 나를 자신만의 편견과 오해로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봐주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더 생겼다는 게 기뻤다



어느 날, 나와 지인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미래가 창창하던, 참 착하고 밝았던 후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와 친구들은 '후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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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아이는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 아무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을까
그런데, 사실 후배의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솔직한 생각은 '부럽다'였다
그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그 아이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어떤 고통을 겪었든 너는 이제 그 고통에서 벗어났구나, 해방됐구나 싶었다
나도 그만 힘들고 싶다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 진심이란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절감했다

고민 끝에,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조심스레 내 상황을 알렸다
정신의학과를 신뢰하지 않던 엄마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나에게 먼저 전문의 상담을 권했고,
친구들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살고 싶게 만들지는 않았다
내가 만약 이 사람들 때문에라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면
오히려 그 부담감 때문에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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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1년은 정말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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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태까지 했던 공부는 공부도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리딩,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견제와 경쟁, 
바닥까지 내려가는 자존감, 
어린 나이에 입학했기에 더 커져가는 외로움,
그리고 더 자주 찾아오는 발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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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여전히 살기 위해 약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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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오랜 시간 숨 막히게 만드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내 왕관이 나를 옥죄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누군가는 그 왕관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고 어쨌든 좋은 결과이니 그 정도의 무게는 당연히 견뎌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얼마 전 민사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학생을 소개받아 만난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비해 똑똑하고 야망도 있던 그 학생은, 
자신이 좋은 부모님을 만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넓은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으니 행운이라고 했다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으니 자신은 부모님의 사랑과 타고난 행운에 평생 보답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끔은 답답하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드라마 <상속자들>에 나오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라는 말처럼 세상에는 참고 견뎌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 어린 친구에게, 나는 무슨 조언을 해주어야 할까?

"화려하고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왕관을 항상 쓰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
언니는 너보다 겨우 몇 년 더 살았을 뿐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깨달은 게 있어
내가 정말 견디기 힘들고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는 왕관을 벗어놔도 그걸 훔쳐갈 사람이 없다는 거야
네가 지금까지 노력해온 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적당히 흉내 낸다고 따라올 수 없어
너무 힘들 때는 내려놔도 되니까 왕관을 너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진 마.
너에게 힘을 주고 꿈을 이뤄줄 수단일 뿐, 왕관이 너를 갉아먹게 해서는 안 되잖아.
애초에 왕관을 쓰려고 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잊지 마."

이 말은 그 학생에게도 건네는 조언인 동시에 나에게 전하는 위로이기도 했다
나는 분명 내 머리 우위에 겹겹이 쌓여가는 왕관 때문에 죽을 뻔했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여태 내가 기울인 노력이 잠깐 쉰다고 무너지거나 어디로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죽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 때도 왕관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왕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왕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쌓은 수많은 노력들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에는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진 주인공 윤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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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자신이 많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감정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당연히 인간관계에 책임을 질 줄도 안다
소설 속 다른 인물들이 묻지 마 폭행으로 흉기에 찔려 죽어가는 사람을 구경만 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전쟁 피해 아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면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복장이 조금 불량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윤재는 얼마나 인간적인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먼저 상처를 주고,
자신이 약하다는 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윤재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보면 "쟤는 참 이상해" 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적인 게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교육 중 하나가 
"너와 나는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는 비슷하다"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공감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타인에게 완벽히 공감할 순 없지만, 훈련을 한다면 서로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상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지 이해할 수는 있을 테니까.
성별이 다르다고, 삶의 지향이 다르다고, 몸이 불편하다고, 취미나 관심사가 특이하다고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다반사인지.

타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많은 차별과 편견을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 교육 제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성적만으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학창 시절 내내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도록 만들어놓고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정서적으로나 인격적으로도 성숙하게 자라길 기대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많은 학교에서 나중에 사회에서 쓸 일이 거의 없는 수학을 어렵게만 가르쳐,
얼마든지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치를 떨게 만든다

인생은 한방이라고 가르치고 싶은 건지 수능이나 LEET(로스쿨 입학 시험)처럼 중요한 시험을 
1년에 한 번만 치도록 제한하는데, 이건 다른 나라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다

누구나 긴장하면 실수할 수 있고 부담감 때문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 당연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예산만 언급하며 다른 방안을 고민하지 않는다


전 국민이 대학을 졸업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일단 무시하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 때문에 굳이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다른 재능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이들을 온통 대학으로 쑤셔넣는다
그러니 온갖 고생 끝에 좋은 대학에 합격해도 이십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번아웃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에 시달리는 학생들도 있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방황하는 학생들도 넘쳐난다

입시가 끝난다고 인생의 불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입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진짜 중요한 인생의 시험이 와르르 몰려왔다
진로를 고하며 결정해야 하는 살 떨리는 선택지,
누군가를 잃고 떠나보내며 느끼는 상실감과 허탈감,
이제서야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는 어른들,
단계별로 미션을 수행하듯 하나하나 할 일을 해치워도, 이내 눈앞에는 또 다른 무거운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나타날 때마다 이 산만 넘으면 된다고,
그럼 난 행복해질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지식 전달뿐 아니라 타인과 공존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다
아무리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사회 생활을 아예 하지 않고 살기는 힘들다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남을 이기는 법, 시험에서 점수 잘 받는 법, 상대방의 약점을 악용하는 법만 가르쳐놓으면 우리는 계속 누군가를 혐오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진학하고 삼성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 돈 많이 벌고 결혼하는 것이 잘사는 인생이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제2의 김연아 선수나 방탄소년단 같은 인재가 나오길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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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도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도 동생이 입시 문제로 힘들어하던 시기와 비슷하다
아직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고민해본 적도 없는데 친구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어디든 합격할 수 있다는 현실은 내 동생을 비롯한 많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친구를 친구가 아닌 라이벌로 인식하게 만든다



일단, 저자가 처음에 써놨듯이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법 같은.. 방법론을 기대하는 분들에겐 맞지 않는 책이다
저자는 민사고를 나와, 듀크대를 1년 조기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중이다
자신의 삶을 차없는 도로처럼 아무 고민없이 평탄하기만 할거라는 편견과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자신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말하는 에세이 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생각하고, 공감할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평소 하던 생각들을 솔직하고, 읽기 쉽게 쓴 에세이 책인거 같다

이런 분들이 좋아할 것 같다
- 에세이 글을 좋아하는 분
- 일상 글을 좋아하는 분
- 마음이 힐링받고 싶으신 분

공감되기도 했지만, 단순히 공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나는 어떤가?' 
'사회는 어떤가?'
'어느 사이엔가 많은 것들이 세뇌되고, 당연하게 생각한 건 무엇일까?'

(밤에 글을 썼다가 다시 날이 밝아서 읽어보니 너무 주저리주저리 쓴 것 같아 수정한다  밤에는 생각이 많아지는 듯 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책 두께는 라이트하지만. 내용은 일상에서 당연시 되는, 익숙해서 지나치는.. 그런 것들을 다시 되집어 주는 느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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