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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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미북은 본 책 작업에서 빠진 여행기와 

저자의 특별 서문이 실린 사전제작 한정판입니다. (비매품)


먼저, 더미북이란 것이 '이러이러한~ 스토리와 이러이러한~ 분위기이다' 라고 일종의 홍보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더 간단히 말하자면... 출간되기 전의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식 책을 사면 더미북을 같이 줘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더미북엔 정식 책엔 실리지 않은 챕터 이야기가 있다

페이지는 총 58페이지로 들고 다니기도 좋고, 간편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인 주제

'여행지를 고르지만 말고,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해야 한다'


아래로 눈을 돌리면 자이푸르 사람들의 분주한 일상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력거와 자전거, 오토바이와 삼륜차,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사방에서 뿜는 매연과 요란하게 울리는 경적소리, 그 사이를 한가롭게 배회하는 사람들과 소, 나귀, 염소, 돼지, 독수리까지...

그야말로 아수라장입니다.

그런데 참 신통합니다. 사고가 나질 않습니다. 가벼운 부딪힘이야 일상이겠지만 

서로가 옳다고 싸우는 장면도 안 보입니다.


여행은 이처럼 어느 하나 같은 곳이 없는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서 다름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지만 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생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고생이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넓고 따뜻한 시선을 만들어 준다면 기꺼이 감수하렵니다.

...

안락하고 평온한 집이 있기에 우리는 떠남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안식처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이면서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 살아 '가는' 여행을 만들어 가고 즐겨 보면 어떨까요?

- 프롤로그 中




우리는 언제 일상생활에서 장소를 인식할까?

모든 사건은 장소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강렬한 기억의 사건은 항상 특정한 장소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장소적인 존재다. 


하지만 장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우리는 그 중요성을 별로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만 정작 그 존재의 기반이 되는 장소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내가 관련을 맺고 있는 장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의식적으로 그곳을 관찰하고 낯설게 느껴 본다면 어떨까?

어쩌면 그 장소가 흥미로운 여행지로 바뀌면서 나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심상지도 = 우리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지도는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된다. (교육, 여행 등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점점 정교하게 수정된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 거치며 우리의 지리적 상상력은 풍부해진다.

지리적 상상력 = 인간의 삶을 둘러싼 시공간을 상상적으로 재구성하는 것

'장소를 취하는 경험으로서의 여행'이 바로 지리적 상상력의 무대가 된다.

이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앎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앎은 상상력이 발휘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축적된다.


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장소를 알아야 하고 

장소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과 비슷하다.

작품을 감상하려면 그 속에 배어 있는 의미를 끄집어내야 하듯이, 장소라는 시각적 대상도 그 속의 깊은 의미를 끄집어내야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예술 작품 자체가 지닌 시각적 아름다움 혹은 외형적 독특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볼거리다.

하지만 모양과 색채만으로는 이목을 끌지 못하는 작품들도 있다.

때로는 '나도 저만큼은 그릴 수 있는데,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화가의 성장 과정, 생각, 그림을 그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등 배경지식을 미리 알아보고, 감상한다면 작품이 색다르게 다가오고 우리의 감상도 달라질 것이다.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 거꾸로 하면 보고 싶은 만큼 알아야 한다.



여행을 위해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 조금만 알고 가도 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ex) 가령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면 언제, 어디로 가야 좋을까?

영국을 위시한 서부 유럽과 북부 유럽은 겨울이면 흐리고 비가 자주 내리는 음습한 날씨가 계속된다.

더군다나 영국과 서유럽은 대체로 북위 50도 이상의 고위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에는 아침 8시가 넘어서야 해가 뜨고 오후 3시가 지나면 해가 진다.

여행자들의 주간 활동 시간이 그만큼 짧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에 여름은 20도 내외의 쾌적한 기온이 유지되고 겨울에 비해 낮 시간이 길어 쾌청한 하늘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처럼 독특한 여행 테마를 어디서 경험할지는 각 장소의 지리적 특성을 정확히 알고 결정하면 좋다.

똑같은 오로라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여러 장소의 지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자기의 취향과 신체 특성에 적합한 장소를 고른다면 보다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에 익숙하다.

특히나 한국인들의 집단 지향적 문화는 혼자 떠나는 여행보다는 단체 여행을 좀 더 선호하도록 유도했다.

어린 시절 단체로 움직이던 학교 소풍이나 수학여행이 생애 최초의 장거리 여행이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군대를 생각해 보라.

낯선 이 여행은 혼자만의 세계를 허용하지 않으며, 내 밖의 것들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수 많은 동호회와 친목 모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 여행은 또 어떠한가.

이들은 회원들 간의 일체감, 즉 나와 내 밖의 것들과의 일체감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고,

여행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혼밥과 혼술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는 최근에 들어서는 한국의 집단 지향적 문화가 많이 약화되었다.

혼자의 자유가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밖의 타자와의 관계 속에 얽매여 피곤하게 마음고생하는 일을 과감히 떨쳐버림으로써 홀가분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혼행을 원하기는 하지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들 혼행이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혼자만의 여행을 망설이는 근본적 이유일까?


나는 그것보다는 혼자라는 사실, 즉 혼자여서 느끼는 외로움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특히 학교 교육을 통해 가족과 민족 그리고 국가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집단 지향적 문화를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습득해 온 한국인의 경우, 혼자만의 여행은 외로움과 불안감을 수반하는, 그래서 대단히 낯선 움직임이다.


그저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상상이자 두려움인 것이다.




첫째, 몰랐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 자신에 대해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고,

- 자신이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무서워 하는 것 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둘째, 멋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은 자기들끼리의 어울림 때문에 아무래도 현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 제약이 있기 마련이다.)

-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낯선 사람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갈 기회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셋째,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정을 마음껏 계획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각자의 취향과 희망을 조율해야만 한다.)

-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


넷째, 실수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진다

- 실수로 인한 새로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자애감을 높여 줄 것이다


다섯째, 자신감이 생긴다


- 세계적인 여행 전문 포털사이트 스카이스캐너 '혼자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여행 가기 전이나 여행 후에도 어디를 가든지 만나게 되는 '장소'들이 있다.

공항, 기차역, 항구, 버스터미널


그 자체로 독특한 문화를 지닌 커다란 조직체다

공항에는 각종 상업 및 서비스 시설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가서 그 틈에 섞이는 것만으로도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같다.

이를 지리학적으로는 = 전이적 장소 = 경계에 놓인 장소 = 경계 안쪽과 경계 너머를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장소

이러한 통로로서의 장소에서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통과의례를 치른 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흩어져 나간다.

이곳을 거치는 모든 여행자는 그동안의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을 출발지에 남겨 놓은 채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곳의 일들을 상상한다.

그러한 여행자의 마음은 순례자의 의식과 다를 바 없다.

 

 

여행자는 자신의 몸속에, 즉 마음속에 국경이 내재되어 있다.

...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은 제3세계 국가를 여행할 때나 과거 공산권이던 국가를 여행할 때 더욱 깊이 체감한다.

여행자인 '나'는 그저 나일 뿐이지만,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내가 소속된 국가와 동일시되는 손님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이 주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내가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그 경계를 분명히 가르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출발 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전 계획을 잘 짜야 현지에서의 여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치 높은 건물을 올리려면 땅 밑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 건물의 뿌리가 되는 골조물을 튼실하게 박아야 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이때 여행 중에 무엇을 먹고 경험할지 정하는 것만 계획에 속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곳으로 가려 하는지, 그곳의 장소와 사람들은 어떤 모습과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곳에서 여행하며 갖춰야 할 생각과 태도는 무엇인지 등을 따져 보고 정리하는 작업 역시 여행의 뿌리와도 같은 기초 작업이다.


그런데 여행 준비가 곧 현지에서의 일정 전체를 깨알같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방문 장소와 동선, 교통편과 숙소, 심지어는 먹을 음식과 음식점까지 시간의 흐름에 맞춰 세세하게 미리 결정하고 예약하는 것으로 말이다.

...

하지만 여행의 불확실성은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ex) 여행하고자 하는 장소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여행지의 백과사전식 소개 자료를 통해 그곳의 자연환경이 딱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그곳의 독특한 장소감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사막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는 모래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줄지어 이동한 뒤 텐트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감상하며 밤을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막에도 미미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과 계절의 변화가 있다.

또한 일교차도 제법 크고 지표면이 암석으로 구성된 사막도 있다.

여름철과 겨울철의 기온차가 20도 가까이 차이나는 사막도 있다.


어느 사막으로, 언제 가느냐에 따라 = 여행 준비가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많은 사람이 여행 중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과정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열차를 단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일정 신호가 없으면 계속 안전벨트를 매고 고정된 좌석에 머물고 있어야 하는 비행기나 버스와 달리

기차에서는 자유로운 이동도 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군상의 수십 명 손님들이 일정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 공간은 일종의 움직이는 마을이다.

전이성을 지닌 낯선 공간이 이내 친숙함을 띈 살가운 마을로 변하는 것이다.

물론 이 마을 구성원들은 마음의 경계를 풀고 기꺼이 서로에게 다가가다가도 각자의 목적지에서 담담하게 이별을 고한다.

이것이 여행자가 교통수단을, 기차를 여행 그 자체로 즐겨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을  누리고자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열차를 일부러 타지는 않길 바란다.

여행에 돈과 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는 세상은 과연 어떨지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여행자가 추구해야 할 여행의 과제가 아닐까?


 

58페이지의 더미북엔 왜 '장소'가 중요한지,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 장소가 주는 의미들을 여행 에피소드를 풀어내면서 이야기해준다

그냥 보면 여행기와 별 다를 게 없어보이지만, 자신의 관점을 어디에 비추느냐에 따라 자신이 보는 그 광경의 '의미'가 달리 보이고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여행 장소는 '보이는 곳' 이지만, '시선'은 '보이지 않는 곳'이다

내 눈은 나만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만 보이는 다른 색채라는 것이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화폐, 날씨, 맛집, 숙소 등 '준비물' 보다 중요한 것.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건 

결국, 나의 태도와 가치관에 따라서 반영된다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던 것들을 그냥 '장식물' 로서 지나치지 않았는지, 여행은 특별한 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눈이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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