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약과 같이 보관해야 하는 책

내 마음의 구급약 - 감정이 상처가 되기 전에
가이 윈치 지음, 임지원 옮김 / 유노책주 / 2025년 9월

이 책은 전문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사람들이 자주 느끼는 심리적 상해인 거부, 고독, 상실, 죄책감, 반추, 실패, 낮은 자존감까지 일곱 가지 감정의 응급 처치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가 상처 입었을 때 덧나지 않게 바르는 구급약처럼 마음의 상처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마음 응급 키트인 것이다. 각 장의 끝에는 정신 건강 전문의를 찾아가야 하는 기준도 나와 있어 더욱 유용했다.

첫 번째 파트 ’거부‘에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이었는데, 거부 당하는 느낌은 인간에게 강한 실망감이나 좌절감, 공포심 같은 감정보다 훨씬 커다랗고 치명적인 고통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짜 상황에서 소외감을 느낀 것이 밝혀져도 그 고통이 경감되지 않았다.

실제로 뇌 영상 촬영에서 거부당하는 경험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육체적 통증을 느낄 때의 부위와 같았다. 따라서 타이레놀을 먹으면 이 고통이 경감되는데, 다른 부정적 감정에는 해당되지 않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나도 일상생활을 하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일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기분이 안 좋아질 때가 있는데, 이 부분을 읽고 그런 내 감정이 당연한 것이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집단에서 배척당하는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날카로운 통증으로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책에는 이러한 감정들이 단지 흔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킬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세 가지 응급 치료법을 제시한다. 실제 환자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 이해하기도, 따라 하기도 쉽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나에게 실질적으로 와닿고 도움이 됐던 파트는 거부, 고독, 죄책감, 반추에 관한 파트였다. 기본값이 우울인 사람이라 기분 끌어올리는 데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 파트들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꼭 내가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주위에 거부, 고독, 상실, 죄책감, 반추, 실패,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하는 지인이 있다면 도움이 될 내용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친구, 연인, 부부, 가족, 직장동료 등 다양한 인간관계로 힘듦이 있는 분들에게도 추천한다.

너무 늦은 시간

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로 반해버린 클레어 키건의 신작 소설집이다. 세 개의 짧은 단편이 묶여 있는데, 각 작품이 쓰인 시차가 25년이나 되는데도 전혀 이질감 없이 여성혐오라는 하나의 주제로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표제작이자 가장 좋았던 소설 ＜너무 늦은 시간＞은 공무원 카헐의 하루를 가만히 따라가는 소설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그의 과거에 약혼녀가 있었고, 그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읽다 보면, 숨쉬듯 여성 혐오를 내재화하고 있던 카헐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작가인 화자가 만난 무례한 남교수에 대한 이야기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다른 남자와의 만남을 갖는 가정주부의 이야기 ＜남극＞까지, 처음 책을 들고부터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뒷이야기가 궁금하고 흥미진진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읽다 보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결말까지 다 읽고 나서 느끼는 서늘한 여운과 그녀가 촘촘히 깔아놓은 단서를 찾기 위해 다시 재독하는 즐거움까지 놓칠 수 없다.

여성 혐오에 대한 책도 많이 읽어봤고, 소설 속 내용이 낯선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는데도, 클레어 키건의 시선과 필치로 그려낸 이야기는 또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그녀의 글을 계속 찾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100자평] 말하다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이 척박한 세상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감성근육을 잘 키워서 강인한 내면을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