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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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로 반해버린 클레어 키건의 신작 소설집이다. 세 개의 짧은 단편이 묶여 있는데, 각 작품이 쓰인 시차가 25년이나 되는데도 전혀 이질감 없이 여성혐오라는 하나의 주제로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표제작이자 가장 좋았던 소설 <너무 늦은 시간>은 공무원 카헐의 하루를 가만히 따라가는 소설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그의 과거에 약혼녀가 있었고, 그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읽다 보면, 숨쉬듯 여성 혐오를 내재화하고 있던 카헐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작가인 화자가 만난 무례한 남교수에 대한 이야기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다른 남자와의 만남을 갖는 가정주부의 이야기 <남극>까지, 처음 책을 들고부터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뒷이야기가 궁금하고 흥미진진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읽다 보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결말까지 다 읽고 나서 느끼는 서늘한 여운과 그녀가 촘촘히 깔아놓은 단서를 찾기 위해 다시 재독하는 즐거움까지 놓칠 수 없다.

여성 혐오에 대한 책도 많이 읽어봤고, 소설 속 내용이 낯선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는데도, 클레어 키건의 시선과 필치로 그려낸 이야기는 또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그녀의 글을 계속 찾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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