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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나를 물들이다 -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1월
평점 :
길.
길에서 시작해 다시 길에 이른다. 걸으며 길 처음을 생각하지 않듯이 길 끝도 생각하지 않는다. 난 나이고 싶다던 법정은 그대로 길이 되었다.(본문)
2010년 3월. 법정 스님은 생전 하던 말 그대로 모든 장례절차를 마다하고 입던 옷 그대로 평상에 누워 불에 들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법정 나를 물들이다’는 다시금 법정 스님을 기억하게 한다. 이들에게 법정 스님은 어떤 분일까. 또 법정 스님에게 이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책은 길상사 법회 진행을 맡으며 법정 스님을 보필했던 변택주가 2010년부터 ‘법정 스님과 만난 사람들’ 이라는 제목으로 현대불교 지면에 연재했던 글들을 담았다.
"저희는 뭐 만나서 거창한 얘기 한 게 없고요. 제 편에서만 그랬는가 몰라도 처음부터 오래 사귀었던 분처럼 아주 편했어요" 천주교 장 익 주교가 1970년대 초 법정스님을 처음 만난 후 느낌을 이같이 표현했다. 그저 한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법정 스님과 장 익 주교의 사이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 외에도 마음의 눈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화가 ‘방혜자’, 법정 스님 앞에서 거리낌 없었던 ‘진명 스님’, 국회의원이자 방송인 ‘이계진’, 연꽃잎 법정 찻잔을 만든 도예가 ‘김기철’, 법정 스님의 어머니를 20여 년 간 모신 사촌동생, 언론운동 현장에서 법정 스님을 만났던 ‘이창숙’ 등 법정 스님과 행복하게 동행해 온 열아홉 명을 만나서 인터뷰를 한 내용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여 년간 법정스님 어머니를 모신 사촌동생 박성직, 팽이 한 자루 들고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파 내려오던 백지현, 스님이 왜 길상사에서 딱 묵으셨는지 사연을 들려 준 홍기은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인연 이야기도 다양하다. 도예가 김기철은 “스님한테 책이나 음악들을 소개받기도 하고, 저희 또한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 스님께 알려 드렸어요”라고 소소한 이야기를 전했고, 진명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불일암을 찾아 불편함을 호소하던 스님에게 “스님! 그게 싫으시면 글 쓰지 마세요. 글을 쓴다는 건 사람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도 많은 고민 끝에 어렵사리 찾아오는 건데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 취급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라고 윽박질렀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법정 스님의 인간적인 부분이 많이 드러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법정 스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