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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이동진 옹이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좀 멀리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 아니다, 분명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솔직해지고 싶지 않다 - 소설이 가진 그 무게가 싫었던 것 같다.
아마도 활자가 지닌 어떤 공포가 나를 짓누르고 억압했던 것이리라...
그러던 중 팟캐스트를 만나, 소설과 재회하게 된 것이다.
순차적으로 하나 하나 듣던 중 김영하 작가편을 듣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제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보며
지금 읽기에 알맞은 책을 구매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이 소설은 분명히 좀 다른 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시점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혼란스러운 시점에 대한 김영하의 이야기.
질문> 시점이 혼재되어 있다. 1인칭과 3인칭 그리고 나가 아닌 ‘우리’라는 설정은 의도적인가?
답> 시점이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흔히 소설에서 말하는 1인칭, 3인칭이라는 것이 있고, 영화 속 시점이라는 게 있다.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시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사실, 소설의 교과서들은 시점을 통일하라고 가르친다.
기타노 다케시라는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코미디언이었던 그가 처음에 영화를 찍으려고 했을 때,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장에 가니 촬영 감독부터 스텝 모두가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가 장난치는구나, 라며 자꾸 자신을 가르치려고 했단다.
그는 촬영장의 여러 규칙을 어겼는데, 그 중 하나가 시점의 해체였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총 싸움을 하다 죽는 장면에서 앙각(앙각 : 밑에서 위를 올려 찍는 것)을 사용했다.
촬영 감독은 알은체를 하며, 시점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죽은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위를 보느냐? 라는 그의 말에 기타노 다케시는 '누가 그걸 신경 쓴다고 그래. 아무도 신경 안 써' 라며 자신의 고집대로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지점이 멋진점이라고 생각했고, 시점에 대한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소설 안에서 시점은 통일되지 않아도 된다!
'나'와 '우리'의 부분에 대하여.
이 둘(동규와 제이)의 관계가 소설의 핵심이었다.
'나'가 아닌 '우리'라고 한 것은 동규나 제이는 개인의 인물이면서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인물 안에 두 가지면을 갖춘 자들이기 때문이다.
제이가 가진 신성에 도달할 수 있는 과잉된 자아와 동규와 같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우울한 자아가 각각이 아닌
둘 안에 마치 하나처럼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