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 개정판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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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속으로 들어가는걸까
아니면 세상밖으로 벗어나려는 걸까'

"사람들이 알아주느냐 아니냐는 것이 다를 뿐,
인간은 모두 코미디언이야" p132

사실 나는 개그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았고
코미디언들의 웃음코드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를 웃기는 모습이 나에게는 억지스럽고
그것은 결코 나의 인생과 이질스럽게 느껴졌다.
나에게 생의 시간은 철학적이고 사유적이여야하고
그래서 꽤나 진지해야 한다고 스스로 고집부렸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무명코미디언의 웃프지만
감동적인 생의 이야기!'라고 말하는데,
책도 그래서 순간의 인연인걸까?
나는 첫 페이지부터 빠져들었고, 지극히 그들의
생의 시간은 사유적이고 사색적이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쓰여진 문장들이
나를 움직이고 가슴 뭉클하게 하고 단숨에
읽어 가게 만들었다. 아니 페이지수는 적은데,
오래 오래 읽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던 도쿠나가,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무명일것 같은 불안함을 안고)
그보다 네 살많은 코미디언 선배 가미야와 사제계약(?)을
맺는다. (그는 내게서 여전히 바보이고 천치다)
그들은 매일 만나서 먹고 취하고 그리고 가난하고
(최저한의 수입을 얻기위해 일을 하고 개그맨으로 버는
수입을 더해도 세대의 평균 연봉에는 한참을 못 미치는)
그리고 남을 웃기려고 산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가미야씨는 바보이고 천치이지만
그의 삶은 너무도 명쾌하게 살아야 할 목적을 제시해준다.
(그러고 보면 이 이야기는 가미야의 전기인듯)

"근데 말이야 수준이라는 게 대체 뭐냐? 애당초 우리는
다 거기서 거기야. 수준 차이 같은 건 없어. 일단 잘못된
인간이 있으면 그거 별로 재미없다고 가르쳐줘야지.
남이 싫어할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유치원에서 배웠잖냐.
나는 유치원에서 배운것만은 확실하게 잘 지킨다고
생각한다. 아, 전부 다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런 거 똑똑히 잘 챙기거든, 내가 초등학교때 배운 건
거의 못 지키지만, 그런 나를 바보로 여기는 놈들, 대개가
유치원에서 배운 것도 제대로 못하는 멋대가리 없는
놈이야."p153

그는 세상속에 살며 세상을 떨쳐 버리지 못하지만
그가 가야할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난하지만
변명하는 일 없이 정면으로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정한 희극인이었다.
'그가 상대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었다. 언젠가 세상을
자신 쪽으로 돌려세울 수도 있는 무언가였다.
그 세계는 고독할지도 모르지만 그 적막은 스스로를
고무해 주기도 하리라. 나는 결국 세상이라는 것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참된 지옥이란 고독 속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p182'우리는 세상에서 도망칠 수
없기 때문에 옷을 입지 않으면 안된다.'p186

다시 세상속에 서야하는 주인공 도쿠나가는
10년간 개그콤비로 함께 했던 야마시타와
마지막 무대를 연다. 그 무대에서의 그들의 개그는
빛을 발한다. 이것이 '불꽃'일까? 나는 정말 그들의
개그를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 스파크스는 오늘이 개그 마지막 날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날이면 날마다 여러분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기쁘네요. 나는 지난 10년을 의지해
살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요, 여러분도 아무렇게나
죽어버려!"p199

* 콤비 개그: 스탠드 마이크를 마주하고 두 명의
코미디언이 각각 '바보 역활'과 '똑똑이 역활'을 맡고,
서로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서만 관객의 웃음을 따내는
형식이다. 바보 역활이 일반 상식과는 동떨어진 엉뚱하고
기발한 얘기로 말문을 열면 똑똑이 역활은 그것을 상식
적인 방향으로 되돌리려고 과장된 반응을 보인다. 지나친
분장이나 몸짓, 소도구 사용은 최소화하고 오로지 둘이
나누는 언어의 묘미로 웃음을 만든다.

지금 어둠을 지나가고 있는 분, 지금 꿈의 방향이 두려운
분,그래도 살아내려고 세상을 마주하는 분... 그러한
분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분명 생의 환한 웃음하나 만날 수 있을것이다. '우리는 분명하게 두려움을 느켰다.
모든 것이 때늦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나 자신의 의지로 꿈을 마감해 버린다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 날들은 결코 단순한
바보짓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p191
그래서 나는끝내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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