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 돼지 뼈 감자탕, 족발을 주문했는데 집 앞에 돼지 한 마리가 산 채로 배달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라진 저녁>은 우리에게 그런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림책 속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해결 방식을 찾아 가는데요. 그것으로 다 해결이 된 건지 의문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많은 것들이 해결되는 시대고, 그것이 점점 당연해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애써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우리의 저녁은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먹는 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다 만들어서 먹고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합니다. 가장 덜 귀찮은 방식을 선호하는 건 확실하지만요. 저는 배달음식의 용기를 정리할 때 항상 난감한 기분이 듭니다. 집에서 먹는 그릇과 동일하게 설거지를 해서 분리수거를 하는데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텀블러나 에코백으로 자연을 지키자고 하면서 배달로 인해 생기는 쓰레기는 어쩔 수 없다고 편하게 생각해버립니다. 한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과 비닐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지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먹을 때마다 죄책감을 갖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림책을 보면서 우리의 저녁에 사라진 것이 정말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정말 우리의 저녁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편리함을 위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의 저녁 식탁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돈을 지불했으니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산 채로 도착한 돼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친다면 정말이지 몸이 뻣뻣하게 굳어질 것 같습니다. 익숙해진 편리함과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해봅시다. 이러다가 정말 우리의 눈앞에 돼지가 도착할지도 모르니까요. 우리의 저녁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