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가엘 조스 지음, 최정수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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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의 인생 파편을 모아 만든 소설이다. 낡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모험하는 사람처럼 비비안 마이어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사망 후 운명처럼 발견된 사진들로 인해 그녀의 작품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아이들을 돌보던 보모로 일하던 비비안 마이어는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니며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암울한 인생을 탈출하기 위해 그녀가 사진을 찍었을까?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만의 방’을 갖기 위한 사람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사진을 통해서 구축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천천히, 꾸준히, 견고하게 쌓아 올린 사진들을 통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찍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 사실은 여전히 의문이다. 자신의 상황이 자신의 재능을 갉아먹으리라고 앞서 걱정한 건 아니었을까. 사진에 대한 재능마저 부정당하면 남은 삶을 견딜 수 없어서는 아니었을까. 용기를 내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한, 그렇게 사라져 버린,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그런 작품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사진이 전부였던 그녀가 사진으로 거절받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잔인하게 느껴진다. 비비안 마이어의 삶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녀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와 사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비비안 마이어가 바라본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어졌다.

뉴욕과 시카고의 길거리 어딘가에서 그녀가 오래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진 않을까. 자신이 죽고 난 뒤, 유명해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책을 통해 나는 그녀가 거닐던 어떤 거리에 타인으로 서 있었다. 세월을 초월하는 그녀와 나의 만남이 이 책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녀가 본 어떤 순간의 사진처럼.


이 미스터리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각자의 모순들로, 각자의 상처들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존재의 비밀을 특별한 방식으로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미스터리는 전설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우리의 이해력에서 벗어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 P38

아무도 그녀의 자유를 훔치지 못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의, 유산으로 아무것도 받지 않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있었다. 그녀는 삶의 모든 비극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유로웠다. 비극적으로 자유로웠다. - P91

녀는 수수한 코닥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어디든 그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고,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그 카메라는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해주었다. 지하수맥 탐사가가 개암나무 막대가 흔들리며 수맥을 알려주는 순간을 기다리듯, 삶의 모든 흔들림에 놓이는 그녀의 주의 깊은 시선을. 비비안은 자기만의 삶을, 가족의 결점들이 배제된 삶을, 모든 충돌•분열•결함들이 배제된 삶을 만들어낸다.
- P99

그곳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들은 평범하고 너무나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장면들을 쉴새 없이 촬영하는 것을 놀라워하며 바라보았다. 심지어 그들이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들 말이다. - P103

그녀의 창조 작업 대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채 비밀스럽게 남아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심지어 그녀 자신의 눈에도 말이다. 그녀는 절대 그것을 보여주거나 팔거나 전시하려 하지 않았다. 동심원들을 통해 접근해야 하는 수수께끼다. - P127

제시할 수 있는 이유들은 많다. 거부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판단을 대면하는 데 대한 두려움, 작품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을 거라는, 그저 단순한 아마추어로 치부될 거리는 걱정. 한낱 가정집에서 일하는 여자, 아이나 돌보는 유모로서 멸시받을 거라는 걱정. 사진 관련 전문가들에게 작업물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 무수히 많은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비비안은 자신의 재능을 의식하고 있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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