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불행사회
홍선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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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불행 사회희망은 온기가 아니라 계산된 안전망에서 시작된다홍선기 자음

 

 눈이 내린 후 또 시베리아 한파가 들이닥쳤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춥고 멀다. 도심의 빌딩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칼날 같았다. 도심을 벗어나 무악재로 넘어가는 버스도 칼날 같이 얼어붙어 있었다.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 강추위는 언제 끝날까. 버스에서 내려 갈아탄 마을버스가 안산 자락을 오른다. 옛날 화장터를 지나 내린 동네도 매서웠다. 갑자기 달려오는 앰뷸런스가 산동네의 밤을 찢어발긴다. 벌벌 떠는 삶과 세상이 그 붉은 소리에 숨을 죽였다.

 

 가파른 계단에 오르는데 숨이 차고 무릎이 아파온다. 이제 늙어버린 두 다리는 굽어졌고 근력도 없다. 계단 3층집은 불빛조차 새어나오지 않고 어둠의 폐허 같다.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축하하던 트리는 1층 구석에 처박혀있고, 반지하 전세집 쇠창살 난간에 핏자국이 붉게 남아있다. 2주일 전 자정 넘어 소방차와 앰뷸런스 그리고 경찰차가 동네 계단 3층집에 출동했다. 노란 경찰 수사선이 둘러 처진 계단 3층집은 죽음의 집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이어 통곡이 들려왔다.

 

 홍선기의 최소 불행 사회이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은 행복보다 불행이 날뛰는 삶과 세상이 아닐까. 불행의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뉴스에 두 눈을 돌리려고 하겠는가. 초고속 인터넷에서도 불행한 뉴스가 초고속으로 흐른다. 계단 3층집 반지하의 비극은 이 책에서 이렇게 묘사된다.

 

 지방 소도시 반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살던 박 씨(70)의 죽음은 어쩌면 예견된 비극이었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공동화되어가는 도시의 한 귀퉁이, 그곳 반지하에서 박 씨는 쓰러졌다. 열흘이 지나서 발견된 그는 이미 차가운 주검이었다. 빈곤과 고립이 빚어낸 필연적 귀결이었다.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해 온, 그러나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비극이다.

 

 홍선기의 최소 불행 사회이라는 책은 저자가 10년간 71차례 일본을 방문하여 그 경험과 지식으로 우리 사회를 통찰하고 예측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불행을 읽는다.

 

 관광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오이소(Oiso)처럼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부터, 첨단 산업과 문화적 인프라가 풍부한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까지 곳곳을 찾아갔다. 10년 사이에 직업도 친구도 애인도 없이 집 안에만 있는 21살 청년부터 캡슐 호텔 라운지에서 홀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는 노인까지. 저자는 일본의 잃어버린 30이 낳은 무수히 많은 불행을 마주했다.

 

 저금리로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광적인 부동산 투기 심리를 낳았고, 이는 노동이 아닌 운과 탐욕이 지배하는 경제가 되었음을 상징한다.

 

 이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광적인 부동산 투기와 주식과 코인 투자는 우리사회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삶과 세상을 파괴할 때 세계 각국은 경제를 위해 경쟁적으로 돈을 풀고 0%대로 금리를 내려야만 했다. 제로 금리와 넘쳐나는 돈이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코인에 몰려들었다. 갑자기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코인이 하늘 높이 오르기 시작했다. 유령처럼 떠도는 금융자본주의 바이러스가 삶과 세상을 투기판으로 몰고 갔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따기 위해 영투(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나 빚투(빚을 얻어 투자)로 인생 투기판에 뛰어들었다. 이 투기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무서운 투기판의 세상이다. 작년 1011일 우크라이나 가상자산 투자자는 키이우의 오볼론스키에 주차된 람보르기니에서 머리에 총을 댔다. 죽음을 쏜 이 자살자는 트레이딩 아카데미 크립톨로지 키의 공동 창립자로, 글로벌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였다. 그는 최근 가상시장 폭락으로 3000만 달러, 43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 특히 이 손실금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상당 부분 포함돼 주변에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불행은 벌써 닥쳤고 삶은 죽음으로 끝났다. 이런 불행은 계속된다.

 

 현재는 무서운 자기만의 불행한 세상이다. 계단 3층집에 전세 살다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연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도 부모가 있었고 식구들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사랑은 찢어지고 불신과 고독만 남았다.

 

 혼자 죽는 노인, 연애 포기한 젊은이··· “일본 기댈 곳이 없다.”

 

 무연사회(無緣社會), 1인 가구 증가로 가족의 유대나 인간관계가 희박해지고 있는 일본 시회의 일면을 나타내는 말로 독거노인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는 30대 젊은 세대로까지 번지고 있으며, 아동학대로 방치된 영유아의 고독 사망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책에 썼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일본처럼 악화되었다. 홀로 살다가 고독사를 당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불행은 멈추지 않는다.

 

 입춘이 지나고 또 설이 다가온다. 거리에 벌써 선물꾸러미들이 보인다. 슈퍼나 마트에 명절 선물들이 쌓여있다. 설 선물을 들고 찾아갔던 어제가 내게도 있었다. 이제는 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셨고, 명절도 그저 평일 후에 오는 긴 휴일일 뿐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계셨던 어제의 명절은 희망과 빛의 세계였다. 사람과 세상의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진 공동체였다. 그 아름다웠던 어제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사랑과 희망의 삶과 공동체를 회복될 수 있다. 고립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 삶과 사회를 위해 운동해야한다. 그 흐르는 삶과 세상에서 다시 관계를 맺고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그것으로 불행은 최소화되고 희망은 별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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