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의 이름은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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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이름은조진주 소설집 현대문학 남아 있는 이름은 무엇인가

 

남중국해와 오키나와沖縄에 걸쳐있던 장마전선이 북상했다. 오랫동안 오키나와를 할퀴었던 장마전선은 일본 열도를 할퀴고 한반도로 올라왔다. 이번 주말부터 작년보다 늦은 장마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길고 긴 장마로 많은 피해가 났는데, 올해 장마는 또 얼마나 삶과 세상을 파괴할까? 전선戰線의 군단軍團처럼 저벅저벅 몰려오는 장마전선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처럼 읽힌다. 장마에 삶과 세상은 밑바닥까지 젖는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조진주의 다시 나의 이름은이라는 소설집을 읽었다. 이 소설집에 실린 9개 단편소설에 삶의 슬픔과 고통이 소용돌이친다. 삶의 슬픔과 고통은 장마전선처럼 피할 수 없는 어둠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어둠 속에 떨고 있다. 어둠 속에서 작가는 삶의 슬픔과 고통을 밑바닥까지 겪고 들여다본다. 왜냐하면 작가는 삶의 슬픔과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고, 그것들을 글로 써야하기 때문이다. 조진주 작가는 그 슬픔과 고통을 담담하게 겪고 단단한 문장으로 연주했다.

 

란딩구바안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정옥은 할머니 배달원이다. 추운 겨울날 그녀는 지하철에 올라 강남의 한 맞춤형 케이크를 중랑구 가정집까지 배달한다. 하지만 두 정거장을 앞두고 지하철이 고장 나서 정옥은 추위에 떨며 걸어서 배달한다. 좁은 길로 들어선 정옥에게 술 냄새를 풍기는 남자들 중에 갈색 머리가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혹시 불 없어요. ?”

정옥은 못 들은 척 그 옆을 지나려 했다.

할머니, 왜 내 말 무시해요? 혹시 불 없어요?”

조용히 좀 해, 병신아.”

아니, 할머니가 내 말을 씹으시잖아. 할머니, 그거 들고 가는 거 케이크 맞죠? 요즘은 케이크 팔 때 성냥 같이 안 주나?”

미친 새끼.”

덩치 큰 남자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정옥은 케이크 상자를 슬며시 몸 옆쪽으로 감추고는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 할머니. 내 말 안 들려요? 혹시 귀가 먹으신 건가?”

시끄러워, 새꺄.”

아니, 왜 다 나를 무시하냐? 이제 늙은 년도 나를 무시하네.”

 

삶은 이토록 너절하고 추하다. 살면서 누구나 이런 어두운 상황을 겪는다. 이런 어둠이 가속적으로 몰려온다. 정옥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결혼 후 출판사를 그만두고 번역 일을 맡아했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그녀는 생활비를 벌면서 아들을 키웠다. 남편과 사별 후 정옥은 30여 년 동안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며 생활을 꾸려 아들을 장가까지 보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삶이 좁은 길에서 모욕당했다.

 

나의 이름은이라는 단편소설에서는 직업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삶을 말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소리를 하며 명창을 꿈꾸던 주화영은 국악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소리는 취미 정도로 하고 무난한 삶을 원하던 부모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명창이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주화영은 기울기 시작한 집안 사정과 맞물려 대학을 포기한다. 그녀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화영이라는 이름은 레나로 바뀐다. 어느 중소기획 소속사에 들어가 펑키파니라는 혼성 크로스오버 밴드 보컬로 활동하게 된 주화영은 레나라는 활동명을 얻는다. 그룹이 해체되자 레나는 오디션을 보고 트로트 가수가 된다. 트로트 가수로서 얻은 이름이 연주황이다. 바뀌는 이름이 삶의 어둠처럼 읽힌다. 이제 남아 있는 이름은 무엇인가? 이 의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처음 이름을 얻었던 곳으로 간다.

 

단지 의문을 품었을 뿐입니다. 어째서 누군가는 그 존재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는 자기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조차 알릴 수 없게 되는지요. 다른 이가 아닌 내가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하는 정당한 까닭이 궁금했습니다. 그 명분을 얻기 위해 유일하고 불가변한 이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나를 지칭했던 많은 이름들은 바다로 떨어진 빗방울처럼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쉽게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이름들을 거치는 동안, 나는 점점 텅 비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그 답을 구하기 위해 내가 처음 이름을 얻었던 강원도로 떠났던 것이었습니다.”

 

연주황은 답을 구하지 못하고 죽는다. 그녀가 탄 버스가 집중호우로 갑자기 불어난 하천에 휩쓸려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실종된 연주황은 결국 죽음을 당했다. 이름을 바꾸어가며 견디었던 삶이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처음 이름을 얻었던 곳으로 가는 길이 죽음의 길이 되고 말았다.

 

등단 후 쓴 당선 소감문에서 나는 조금 거창한 이야기를 했었다. 대충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글을 쓰면서도 의심스러웠다. 누군가를 온전히 안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때도 지금도 내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금 아는 척을 해볼 뿐. 그러나 알아가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다시 나의 이름은이라는 소설집은 조진주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은 잘못된 삶에 대한 답과 남아 있는 이름을 찾아가는 험한 길이 놓여있다. 누구나 답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조진주 작가의 소설은 그 길 위에서 담대하게 견디고 싸우는 힘을 준다.

 

주말에 많은 장맛비를 뿌리고 남하했던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을 할퀴었다. 집이 무너지고 삶이 파괴되었다. 그 어둠의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억수로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분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빗방울이 튄다. 삶과 세상에 걸쳐있는 어두운 장마전선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에 맞설 것인가, 아니면 물러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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