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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류정호 지음 / 파람북 / 2021년 1월
평점 :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류정호 지음 – 봄
K가 아침부터 외출준비를 한다. 폭설 뒤에 닥친 강추위가 K의 아픈 허리가 공격했다. K는 3년 전에 부러진 허리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K는 허리 통증을 견뎌내고 있다. 걸을 때 허리 통증이 무릎에 무리하게 힘을 주어, 이제는 다리도 아프다. K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 버스정류장까지 걷는다. 겨울의 끝에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류정호님이 쓴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당뇨병으로 신장(콩팥)이 나쁜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하며 겪은 고통을 쓴 책이다. 이 책에 있는 혼인서약을 천천히 읽었다.
나는 당신을 남편으로, 아내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수십 년을 화성과 금성에서 따로 살아온 남자와 여자가 만나 다시 수십 년을 갈등하며 인내를 배웠고, 인내는 수행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익혀온 수행은 끝내 희망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는 충돌과 갈등 속에서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우리 부부가 내어주고 받아들던 순간들이 35년 세월의 강을 이루었다.”
푸르던 5월, K와 나의 결혼식 주례 선생님은 고향 중학교 은사였다. 그 분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믿고 존경하며 살아야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느덧 26년이라는 흘러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었다. 우리의 혼인을 지켜보시던 은사님과 두 분 어머님 모두 이제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세월은 이토록 빠르고 허무하다. 이제 누가 우리의 남은 삶을 지켜볼까. 하나 뿐인 자식도 멀고 먼 타국에 있다. 삶은 그저 슬프다.
“결혼 3년 만에 성조에게 당뇨병이 생겼다. 당뇨병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걸리는 ‘부자병’이고 아주 무서운 병이라고 스쳐 듣기만 했던 생소한 병명이었다. 금쪽같은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며 새벽마다 기도하던 엄마에게 막내 사위의 당뇨병 소식은 벽력과 같았다. 당뇨병은 엄마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죽을병이었다.”
당뇨병은 오랫동안 삶을 괴롭혔다. 혈당이 정상 수치보다 높은 당뇨병은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당뇨병으로 혈압이 높아지고, 급기야 신장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망가진 신장으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신장 이식을 받아야만 한다. 결국 류정호님은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한다.
“혈연의 관계가 아닌 부부에게는 여러 변수가 있어 이식의 절차가 순조롭지 않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식 전 1차 검사에서 혈액형에 문제가 없었고, 유전자 교차반응 검사도 음성 판정으로 이식 가능의 문을 열었다. 결혼 35년 만에 하늘이 정해준 천생연분임을 확인한 것이다. 천생연분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부부가 얼마나 되겠나. 우리 부부는 이식수술 후에 비로소 일심동체를 이룰 것이고, 끝내 동병상련의 길을 함께 걸어갈 천생연분이다.”
강추위를 뚫고 달려온 버스에 K와 함께 오른다. 마침 비어 있는 노약석에 K를 앉히고 엉거주춤 서서 천변을 달리는 차창을 본다. 겨울의 밑바닥을 견뎌내고 있는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가지 뒤로 우중충한 내부순환도로가 뻗어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만나 인연을 이루고, 천생연분 부부가 되었다. 세월의 세찬 강물이 삶 속으로 거칠게 흘러갔고, 삶은 늙고 병들고 말았다. 허리가 아픈 K를 위해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다. 차창으로 잿빛의 병원이 다가왔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한 후 류정호님은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겪는다. 그것은 남편의 삶을 위한 죽음의 고통이다. 믿음으로 고통을 견뎌낸다. 사랑하는 남편의 병든 몸이 내 몸이기에, 신장을 이식하는 것이다. 사랑은 이 죽음을, 고통을 극복하게 한다.
버스에서 내려 K의 손을 잡고 병원까지 걷는다. 매서운 바람이 삶을 후려친다. 우리의 푸르던 봄은 멀리 지나갔다. 이제는 눈보라치는 삶의 겨울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병원 안은 따뜻했다. 물리치료실까지 K를 데려다주고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우리에게 남은 사랑으로 고통을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사랑이 있으면 겨울도 언제나 봄이다.
봄
류정호
복사꽃 피고
앵도꽃 피고
박새,
우짖는 봄바람에
복사꽃 지고
앵도꽃 지는데
사람아,아픈 상처 하나 있어
사는 일에 꽃 한 송이 피어남을 알지니
이 봄
슬픈 병 하나라도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