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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한 유산 - 8명의 가족이 다 때려치우고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난 이유
제준.제해득 지음 / 안타레스(책인사) / 2020년 8월
평점 : 
한 사이트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봤는데,
<평생 캠핑카 타본 적 없는 할아버지, 난생처음 미국에 가보는 장모님,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인 큰 사위,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이모> 라고 써있어서 깜짝 놀랐었다. 이렇게 써두면 보통 A의 할아버지, A의 장모님, A의 큰 사위, A의 이모가 함께 여행을 떠났다고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대체 이 희귀한 조합은 무엇일까. 이 조합으로 여행이라는게 가능이나 할까라는 생각에 호기심이 증폭되었었는데 책을 직접 읽고보니 이 소개글은 잘못된 거였다.
본문엔 분명 <평생 캠핑카 타본 적 없는 아빠, 난생처음 미국에 가보는 엄마,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인 큰 매형,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큰누나...>이런 식으로, 작가의 시점에서 가족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책은 3대 가족이 40일간 다녀온 미국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여행의 최연소 참가자 나이가 생후 22개월이라는 부분이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여행은 국내일지라도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고 조심스럽기 마련인데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셨을까 하고 아이 부모님께 박수를 보내리고 싶다.
두 명만 여행을 떠나도 여행이 길어지면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곤 하는데 부부, 그 부부의 아들딸, 사위 둘, 손녀까지 8명의 대가족이 떠나는 40일간의 여행이라니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생각보다 가족간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갈등이 있었고 상처받았고 힘들었지만 이해하고 노력하고 극복했다' 식의 서술 정도?
나는 책을 굉장히 더디 읽는다. 책에서 묘사하는 장면들이 머리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이해될 때까지 반복하고 반복하는 답답한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 책은, 책장이 아주 빠르게 넘어가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책을 다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나 친절한 설명은 별로 없다. 초반 읽을 때는 그 부분이 살짝 불만스러웠는데 주제가 여행을 통해 느끼는 가족 관계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도 같다.
책은 44개의 짧은 에피소드들로 묶여있는데, 아버지와 아들의 일기같은 글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구성이 신선했다. 한번에 두 권의 책을 읽는 듯한 뿌듯함인 듯도 하고....뭔가 구성이 알차다는 기분을 가지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아들의 글은 생각이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치기 어린'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들도 종종 있어 그냥 읽어내려갔지만, 아버지의 글은 읽기가 물흐르듯 편했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90쪽에 나온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작은 누나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그간 나는 일상에서 늘 만나는 장소가 아닌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 현장에서 새롭게 배우고 알게되는 것들이 여행의 매력이라 생각해왔는데, 여행에서 느낀 행복에 대한 이 가족의 대화를 들여다보니 여행의 다양한 매력 가운데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매력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나를 옭아매는 온갖 걱정과 고민들을 떠올릴 겨를 없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무탈하고 온전하게 누리려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기억하고 싶어 따로 플래그잇을 붙여둔 곳은 36번째에 있는 아버지의 글이다.
<가족을 남으로 만들고 나서야 행복해기지 시작했다>가 소제목이다.
"남이라면 상처받을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을 가족이기 때문에 더 실망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때로는 노여워한다." "남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이 기대하고, 더 크게 실망한다."와 같은 표현들이 나와 가족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다른 가족들을 내 기준에 너무 맞추려고 하는 건 아닌지, 내가 가족들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은 건 아닌지 반성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어딘가에 따로 메모해놓고 두고두고 잊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여행도 아닌데, 이 가족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책을 읽어가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뭔가 예상치 못한 일 또는 해결하기 힘든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하고 읽은 책이 아니지만, 이 가족이 4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와 준 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이 가족에게 내내 사라지지 않고 기억속에 남아서 이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위대한 유산'이 마냥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