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는 혼란한 사회를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원래부터 완전히 뒤죽박죽이고 무질서한 사회를 민주주의로 수습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성립합니다. 이것이 토크빌의 주장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조건입니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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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은 존비어체계의 문제점을 깊이 파고들어 공개적으로 지적한다. 그는 이 체계로 말미암아 한국인들이 정치적 민주주의를달성했으면서도 불행히도 여전히 "유사신분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말한다. 그래서 그는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이라는 책을 집필한것이다. "앞으로 한국인이 이러한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이 하필 내 몫으로되어버린 현실이 자못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나서지 않으니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하늘에 맹세코 정성을다하고, 또 정성을 다할 뿐이다." 책 머리말을 마무리하는 최봉영의 이말은 정말 비장하게 들린다. 뿌리 깊은 언어적 관행으로 인해 우리는얼마나 더 불행한 것일까? 언어는 존재의 집이지만(하이데거) 문을열고 간단히 외출할 수 있는 집이 아니며,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언어적 운명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획득하기가 정말 힘들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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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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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idea‘(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이 말은 문맥에 따라 생각, 사상, 관념, 아이디어 등 몇 가지로 바꿔 번역했다. 하지만 일상적인 의미도 포함한다는 점에 유의하라 :옮긴이)이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해야 할 듯싶다. 이 책에서 다룰 생각들을 선택할 때 어떤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과거와 현재에 중요하다고 보는 추상적 생각이나 발명을 선택했을 따름이다. 고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이 처음으로 추상적 생각을 하게 된것은 약 70만 년 전 돌도끼가 같은 규격으로 표준화되었을 무렵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바로 그 점이 초기 인류가 도끼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이 쟁점에 관해서는 53-56쪽에서 다루었다. 하지만 나는 250만 년 전 도끼가 처음 발명된 것도 ‘생각‘의 증거라고 본다. 초기 인류는 자신의 손톱이나 이빨보다 예리한 돌이 짐승의 가죽을 찢는 데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자도 하나의 생각이다. 그것도 기원전 3000년 이전에 발명된 아주중요한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철자나 단어를 발명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발명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발명은 생각의 증거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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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 탁월했지만 이해되지 못한 경세가

신진들은 구신들을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척신 체제와 구신들 개인의 인격을 동일시했다. 제도와 그 속에 있는 개인을 구별해서 보기에는 구체제의 파행이 너무 심각했고, 신진들은 너무 젊었다. - P68

요컨대 그전에는 정치란 적절한 사람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정치 세력이 교체된 뒤, 이이는 비로소 ‘사람의 문제‘에서 ‘방법과 태도‘의 문제로 경세의 방법론을 전환했다. - P93

이이는 동료 관료들에게서도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어찌 보면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이가 요청한 민생 정책들은 향약처럼 사대부들의 경험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인간은 생활 공간을 달리하는 타인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할 정도로 강한 지각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더구나 이이가 주장한 것들은 아주 오랫동안 국가의 정책 현안에서도 빠져 있던 문제였다. 국가는 정책을 통해서 백성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이 국가 존립의 일차적 이유라는 사실도 사람들에게 잊힌 지 오래였다. 조정의 관료 중 누구도 이런 종류의 문제를 다루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것은 심지어 이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이이도 필요한 정책 현안을 인식하기는 했지만, 그 정책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제시할 수 없었다. - P98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정 동료들뿐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조문한 예가 두 사람 나온다. 한 사람은 이이이고, 또 한 사람은 김육이다. 이이는 공물 변통을 체계적으로 주장한 사람이고, 김육은 공물 변통을 실제로 성립시킨 사람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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