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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즈케 왕국
마이클 모퍼고 글.그림, 김난령 옮김 / 풀빛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톰 행크스라는 배우를 참 좋아한다. 그다지 잘 생긴 외모라고는 볼 수 없는 수수한 얼굴에 작품마다 또 다른 한 사람을 완전히 만들어 내는 그의 연기에 빠져든다. 그런 그가 몇 년 전에 무려 20kg이나 감량하며 찍은 영화가 있다. 바로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이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불시착해 원치 않던 무인도 생활을 4년이나 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문명으로부터 격리된 한 인간이 어떻게 생존해 가는가를 보여주었다.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리며 무척이나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 온 마이클 가족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함께 일하시는 엄마, 아빠의 벽돌 공장이 문을 닫게 되고 두 분이 모두 해고 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한 집 안의 생계를 위협하는 큰 사건이지만 아빠의 결정은 다소 당혹스러웠다. 페기 수라는 요트를 사서 전 세계를 항해하는 계획을 세우셨다. IMF를 겪은 우리나라의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과감한 결정을 한 부모님의 결정에 놀라워하며 그 결정을 기꺼운 마음으로 수용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게 했다.
땅 위에 발 딛고 사는 것도 힘들지만 바다 위를 항해하며 사는 것은 더 어려워 보였다. 예측할 수 없는 바다의 모습에 좌충우돌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워가며 항해를 계속해 나간다. 마이클의 항해일지를 통해 그들 가족을 지켜보며 위험성보다는 부러움의 감정이 앞선 걸 보면 휴가철이 가까워 오는 현실 때문이 아닐까한다. 그들 가족에게 불행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 왔다. 가족과 같은 강아지 스텔라가 물에 빠지며 스텔라를 구출하려던 마이클이 물에 빠진 것이다. 모든 것을 지우려는 듯한 어둠 속에서 위경련으로 쉬고 있던 부모님은 사고를 알지 못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그에게 구원의 힘이 되어 준 것은 스텔라와 친구 헨리의 이름이 쓰여진 축구공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구조 되어 섬으로 온 마이클은 섬 안의 이방인이었다. 구조를 해 준 사람마저 구획을 지어 놓고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은 동지일수도 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마이클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보면 동지였다. 하지만 그는 마이클의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것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보여준다. 그에 대한 반발로 바다에 뛰어든 마이클은 해파리의 독에 의해 마비가 되고 또다시 도움을 받게 된다. 건강을 찾으며 마이클은 그가 일본인 켄즈케이며 전쟁의 회오리 속에 가족을 잃었다는 생각으로 섬에 살며 그만의 왕국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을 좋아하는 마이클과 켄즈케의 공통점을 그들의 마음을 열수 있게 만들고 켄즈케의 또다른 가족인 오랑우탄과도 마음을 나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래도 로빈스 크루소보다는 나은 연장이나 물품을 제공 받을 수 있었던 켄즈케의 생활은 생존을 위한 삶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돌아갈 고향과 가족이 없는 일본은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땅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만의 왕국에서 밀렵에 희생되는 오랑우탄을 지켜주며 그만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둘의 공생을 바랐던 켄즈케지만 마이클에게는 자신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마이클은 구조를 포기할 수 없었고 둘은 또다시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켄즈케이기에 마이클이 섬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신도 마이클와 함께 섬을 떠날 수 있었지만 그에게는 오랑우탄을 지켜줄 그의 왕국이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이클의 병편지와 함께 구조를 하러 온 것은 페기 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켄즈케는 결국 섬에 남았고 자신의 왕국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았던 켄즈케와의 약속으로 10여년이 지난 후 마이클은 자신의 모험을 글로 세상에 알린다. 그러면서 켄즈케의 가족이 원폭의 피해를 보지 않았고 아들이 살아있음을 알게된다.
모험의 흥미진진함과 함께 가족의 의미와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감동적인 대장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