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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둘 하나
최나미 지음, 정문주 그림 / 사계절 / 2007년 11월
평점 :
5, 4, 3, 2, 1. 발사!
카운트다운은 숫자를 거꾸로 헤아린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는듯 원점으로 돌아오는 카운트다운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존의 것을 새로 시작하는 출발점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아무 것도 없는 0의 상태에서 앞으로 발을 내딛는 바로 그 지점으로의 회귀에 무게를 실어 주고 싶다.
‘셋 둘 하나’라는 특이한 제목을 보면서 과연 어떤 내용일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수호천사, 마술 모자, 셋 둘 하나의 세 단편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편의 것을 제목으로 삼은데는 나름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글을 읽어나가며 단지 한 단편의 제목이 아니라 세 글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건이 모두 해결되어 슬프게 혹은 기쁘게 마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글의 끝이 새로운 시작을 열어 놓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받은 아이로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는 자혜. 그래서인지 늘 당당하다.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친구들의 관심조차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혜에게 의외의 적수가 나타난다. 전학 온 선우의 엉뚱스러움은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 선우를 견제하던 자혜는 적보다는 친구로 만들기로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선우에게 영원한 우정을 맺으려는 자혜에게 선우는 칼날을 꽂는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선우의 말에 자혜는 선우에게서 멀어져간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먹을 것이라고 하는 선우에겐 ‘영원’이란 의미가 부질없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기본적인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먹을 것의 소중함을 부르짖는 선우의 마음을 자혜를 헤아리지 못했다. 인간의 감정이란 일방적일 수 없다. 일방적이라면 누구든 한 쪽은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귀신 소동을 통해 선우의 아픔을 알게 되고 선우의 손을 잡은 자혜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혜와 선우의 우정은 또다른 시작을 열었다.
중학교 입학을 거부하는 효주는 자신에게도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고집쟁이, 독불장군으로 문제아 취급을 받는 자신이 중학교에 간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아빠도 할머니와 고모의 걱정어린 잔소리도 효주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밖으로 나온 효주는 손수레에 여러 가지 물건을 싣고 다닌 아줌마를 만난다. 마술 모자로 덮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를 알 수 없는 노래가 효주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족이 있었으면 하는 소원을 마술 모자에 빌고 피붙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사는 아줌마와의 만남을 통해 효주는 노래의 정체를 알게 된다. 부드럽게 머리를 매만지며 불러 주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 속에서 발견한다. 의도적으로 아니라고 부정하던 엄마를 다시 찾는다. 일상적인 생활을 거부하던 효주의 반란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여 다시 시작된다.
삼세판. 3이란 숫자가 적용되는 일들이 참 많다. 그런 3에 대한 연구마저 있었으니 참 희한한 숫자다.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완전함을 찾고자 했음일까? 단짝 친구 세 명은 늘 누군가는 하나가 된다. 서로에게서 그 하나가 되고 싶지 않은 위태위태함을 발견한 재희는 전학 온 왕따 은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함께 한다. 비로소 둘 둘의 편안함을 발견한 친구들이 우정은 평온을 맞은 듯 하지만 사회 시험을 통해 금이 간다. 자신과 함께 해주는 친구들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은혜의 절절함을 믿지 못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은혜를 몰아친다. 함께이면서도 늘 셋과 하나였던 은혜의 비참함을 아이들은 동정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들 자신들이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잡아 둔 것임을 스스로 깨닫는다. 자신들의 우정이 비겁했음은 인식하고 제대로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어야 함을 깨달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우정이 자랄 수 있는 시작점이 생긴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는 수많은 카운트다운을 통해 새로 시작하지만 늘 과거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한다. 오늘이 바로 그 카운트다운의 0이 되는 날임을 안다면 오늘보다는 한 뼘쯤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