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인생그림책 21
이순옥 지음 / 길벗어린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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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걷기를 좋아해요. 복수초, 매화가 피는 시간부터 꽃을 따라, 초록이들을 따라 둘레길 걷는 것을 즐겨요.

커다랗고 화려한 꽃들도 보기가 좋지만 제일 좋아하는 꽃들 중 하나가 꽃마리에요. 지나치다보면 꽃이 있는지조차 알아 차리기 어려운 아주 작은 꽃이지만 가만히 마음을 담아 들여다 보면 세상 아름다운 하늘빛깔을 담은 꽃이지요. 흔히 들꽃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제자리가 없어요. 그저 한 줌의 흙이면 족하죠. 식물 집사의 보살핌 따윈 사치에요. 한줌의 흙과 자연이 주는 빗물이면 어디든 뿌리를 내리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죠. 그야말로 '틈만 나면' 뿌리를 내려요.

이순옥 작가님의 신간 '틈만 나면'을 만나면서 제목을 한참 들여다 보았어요. 길가 벤치의자 사이로 고개를 쭈욱 올려 꽃을 피운 개망초와 제목이 어울어진 아름다운 표지에요. 그러다 어른들인 '저녀석은 틈만 나면 딴짓이야.'하며 조금은 부정적인 문구로 '틈만 나면'이 쓰인다고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띄어쓰기를 바꿔봤지요. '틈 만나면'. 살짝 자리 하나 옮긴건데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틈을 만나면 자신의 자리로 여기로 뿌리를 내리는 들풀. 멋진 녀석들이에요.

연필로 담백하게 이어가며 들풀을 채색이 되어 있고 중간중간 전체적으로 색이 들어간면이 등장해 책장을 넘기다 깜짝 놀라기도 했네요.ㅎㅎ 평소에도 길을 걸으며 콘크리트나 보도블럭 사이에 난 초록이들을 눈여겨봐 하나하나 작가님의 손끝에서 그려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어요. 질경이, 쇠비름, 명아주, 까마중, 꽃마리....이름도 참 정겨워요. 예전에 먹거리가 없을 시절에 나물로, 간식(까마중 열매를 따 먹은 기억이 있네요)으로 삶을 이어주기도 한 대단한 아이들이죠.

얼마전 동생이 작은 화분에 씨앗을 심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후두둑 쏟아 부었대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힘을 합해 흙을 들어올렸지 뭐에요!!!! 대단하죠? 너무 미안하고 대견해서 흙을 들어올려 치워주었다고 하더라구요.

집에서 기르는 화분들에도 객이 등장했어요. 사랑초 화분엔 괭이밥이 객, 페페 화분엔 이름 모를 초록이가 객, 샤프란 화분엔 사랑초가 객. 울집 화단은 이렇게 어울렁더울렁 살아요.ㅎㅎㅎ

초록이들이 자라는 '틈'은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그들의 생태는 어려우면 그에 맞게 진화하기도 했구요. 높이 오르는 담쟁이 귀욤귀욤한 덩쿨손에 홀려 몇번이나 살짝 잡아당겨 보았는데 생각보다 흡착력이 세더라구요. 그저 틈만 나면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게 변화하며 씨를 퍼뜨리고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해요.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잡초들에게서 삶의 에너지를 받는다고 할까요? 저런 미물들도 살기 위해 저리 애쓰며 버텨나가는데 살아보자, 견뎌보자, 까짓거하며 한 걸음 더 걸어보자는 마음이 생겨요.


담백한 녹차를 한 잔 마신 기분으로 책 장을 덮는데 바코드가 눈에 들어오네요. 세상에 바코드 틈마저도 놓치지 않았네요. 틈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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